[들어줬으면] 내 친구가 짝사랑 중이야 [좋겠다] 10
301
아... 이거 너무... 안타깝다; 어떡하냐;;;
302
시발 진짜 뭐 어떻게 말을 못하겠네 무슨 심정인지 알거같음
그렇다고 지금 B도 널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잖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303
누가 이거 결말 날 때까지만 저 좀 재워주세요 제발
304
>>303
나사 가서 돈 받고 자라
100일동안 잠만 자기 실험 같은 거 한다더라
305
>>304
대박 평소에 하는 일 하고 돈도 받고 일석이조
306
>>305
미친니트놈아 정신차려! 그 사이 완결나서 스레주가 스레 삭제하면 어떡해!
307
>>306
미친 니트 살 의욕 불태워주는 스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08
아 지금 고구마 184701238740억개 쯤 먹은것같음 시발 목막혀 죽을것같아요
309
아직까지 스레주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는 게 놀라움 과연 심장맨
310
>>309
심장이라 하지 말라고. 기분 나빠.
그리고 평소에는 심장보다는 뇌 역을 한다. 심장 역 하는 애는 따로 있어.
311
>>301
뭐야 이 구체적임...!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필요 없어!
312
스레주 그래서 K한테 뭐라 했어?ㅠㅠㅠㅠㅠ
K 진짜 신경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조금 진지하게 다가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오지랖이긴 하지만 너무 돌직구만 던져서도 안 될 것 같아.
313
>>312
ㅇㅇ나도 동의.
지금까지는 솔직히.. 그냥 연애스레 보는 느낌이었거든? 그런데 K 진짜 존나 섬세한 애인거같고 주변을 엄청 신경쓰네.
이런 타입은 돌직구 아무리 던져봤자 제자리걸음밖에는 더 안해.
차라리 A랑 해결책을 찾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314
그런데 지금 스레주 K네 집이라지 않았어??? 얘기 일단락되긴 한거야?ㅇㅅㅇ;
315
>>314
폰이라 느리고.
316
>>315
예 죄송합니다 스레주 님. 제가 또 주제넘었습니다.
317
아 K가 뭐랬을지 궁금하다 진짜 초조한데?
지금 손톱 물어뜯고있음;;
318
>>317
니트야! 엄마가 손톱 물어뜯지 말랬지!
319
>>318
제가 애 엄마입니다.
320
>>319
아이고 제가 어머님을 몰라뵙고..
321
>>318
아 상황극하지 말랬잖아~!
스레주가 헷갈린댔잖아ㅇㅅ"ㅇ!
322
상황극 금지도 다음 스레에는 본문에 크게 딱 박아두자. 빨간색으로.
323
>>322
미친 저주스레냐
324
>>322
다음 판이... 생긴다토..........?
웬만하면 여기서 끝내자 우리
325
>>322
324한테 동의함 B랑 K 말려죽일 일 있냐ㅠ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26
스레주 블루투스 키보드 퀵으로 보낼 테니 제발 받아주십시오
327
나: 샐리의 다이어리 재미 없다는데 넌 그 영화 스토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다 했구나. 정말 센서티브하네.
K: 쿠로오 군은 언제나 섬세했답니다, 흑흑.
나: B를 사랑한다고, K?
K: 진심이야.
나: 그런데 B를 상처 입힌 거야?
328
스레주가 또 저질렀다-!!!!!
329
스레주 그런 돌직구는 안된댔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330
K를 심장마비로 죽인 다음 열쇠 훔쳐서 K 집 들어온 거 아니냐?
혹시 지금 증거인멸중임?
331
누가 스레주 좀 말려봐
A!!! 도와줘요!
332
>>330
K 멀쩡히 살아있고. 지금 이불 덮고 있다.
333
>>332
그 말을 어떻게 믿냐
334
본격 이제는 스레주 말도 못 믿는 스레
335
K는 좀 놀란 듯했다. 눈만 끔벅거리더라고. 그런데 원래 눈이 작아서 별로 티는 안 났다.
336
저기요 스레주님 스무스하게 K 까지 마세요. 소중한 친구잖아요.
337
>>336
? 사실인데 어쩌라고.
338
>>337
아닙니다 스레주 님 계속 말씀해주십시오.
339
K 그런데 진짜 용케 안 쓰러졌네
나였으면 쓰러져서 울었다;
340
>>339
걔 그 정도로 연약하지 않아. 오히려 강철 같은 마음을 지녔다.
341
>>340
저기요 방금 전에 분명 섬세하다 그랬거든요 네가 직접
342
>>341
뭐 섬세함과 연약함은 다르니까..
섬세하면서 강할 수도 있는 거지만 스레주 경우는 다르다
저 250km/h 신칸센 돌직구를 맞고 살아있다니 K는 무쇠다리 무쇠팔인게 분명함 ㅇㄱㄹㅇ ㅂㅂㅂㄱ
343
나: B 울었댔어, 네가 자기 싫어하는 거 아니냐 그랬대. 연습도 못할 정도로 울었다더라. K 넌 그게 좋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울고 실망했다는 얘기를 듣는 게 좋아?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아. 하지만 겨우 영화 보는 거까지 그렇게 쳐낼 필요는 없잖아. B가 불쌍하지도 않아?
K: 불쌍해.
나: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이야. 웃지 마.
K: 불쌍하다고.
K: 사람한테 잘 휘둘리는 게.
나: ...
K: 스레주, 너 말야. 거짓말하면 티나는 거 아냐?
나: 무슨 소리야.
K: 오른쪽 볼 위에서부터 입가 부근까지 엄청 창백해져, 어릴 적에도 그랬거든.
나: ...
K: 솔직해지자.
K: 난 B가 날 좋아하는 게 불쌍해.
344
??????????????????????????????????
345
???..????????????????????..?????????????????????
346
예? 저 잠깐 머리통을 맞은것같은데 다시 끼워놓고 올테니까 리핏애프터미
347
>>346
뭘 따라하래 너는
348
저.. 이 스레 나갈게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것같음 완전 풍랑 아니냐
349
야 시발 도로시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알겠다
미친 휩쓸려보면 모르는 곳이고 모르는 곳이고 여기는 또 어디냐
스레주 심장마비 안 걸렸냐?
350
은구두 한 짝은 K한테 한 짝은 B한테 있는 것 같은데 그거 좀 우리한테 주라 그래라
351
아 현기증나... 그래서 K는 이미 B가 자길 좋아하는 걸 알았다고?
그런데 모른 척하고 영화 약속까지 취소한 거고?
미친 무슨 이런 철벽이 다 있어
352
나: 알았어?
K: 알았지. 도시락 때부터 알았어.
나: 어째서 말 안 한 거야.
K: 몇 번 드러냈지요? 나랑 B 이어줄 생각 아주 만만하다고 말했지요?
나: 그랬지.
K: 스레주 넌... 절대 나한테 맘 없는 사람과 날 이어주려 할 사람이 아니거든. 이래봬도 너 나 좋아하잖아.
나: 뭐지 그 자신감은?
K: 그렇게 있는대로 인상 구기지 말아줄래
353
스레주 정말 츤데레구나..
츤데레의 표본 같은 사람
354
>>353
츤데레라고 하지 말래.
사람을 캐릭터화하는 거 그만둬줬으면 좋겠어.
355
K 진짜 통찰력 쩐다; 괜히 고등학교 운동부 주장이 아니구나;
저 한 마디로 꿰뚫어보냐;
356
>>355
B도 운동부 주장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357
>>356
아시발 B도 통찰력 있을 수 있잖아 너 우리 B 무시하냐?
358
>>357
A...? A니?
359
>>358
감히 A 님을 모욕하지 마세요 그 분은 저 같은 니트따위 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분이십니다
360
여기 누가 A 신전 차렸냐
361
그런데 K 진짜 저 정도면 사귈 맘 조금도 없는거 아니냐.
스레주 이쯤하고 포기하는 게...
362
>>361
이 스레 목표가 뭐랬지?
363
>>362
B 죽이는 거였나
364
>>363
미친놈아 그 목표는 갈린 지 좀 됐어!!!
365
>>364
애초에 그게 목표였던 적도 없어...!
366
B와 K를 사귀게 하는 걸로 최종목표 바꿨었지?
아마.. 두 판 전에
367
>>366
그래. 그럴 생각이다.
절대 안 물러서.
368
시발 스레주 불붙었잖아 이거 어쩔 거야
369
K는 조금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쓸쓸해보여서 B가 더 싫어졌다.
K: B가 로맨스영화 예매내역을 보여줬을 때 깨달았어, A와 네가 우리 둘을 돕고 있다는 거. B는 그런 계획 혼자 못짜거든. 그 녀석은 좋아하는 애랑도 운동을 하려 하지 절대 영화를 보려 할 애가 아니야. 아마 A 군이 돕지 않았으려나 했어.
나: 왜 승낙했어, 그때는.
K: 버틸 수 있을 줄 알았어.
K: 그게 다야.
370
정말 산뜻한 고딩게이연애스레일 줄 알았는데..
371
그래서 스레주는 어떻게 걔 집에 들어가게 된거냐
도저히 뭐 들어갈 분위기가 아닌데
372
>>371
?못 들어갈 게 뭐 있어 소꿉친구인데
373
>>372
제가 모르는 새에 소꿉친구 뜻이 무단침입범으로 바뀌었나요?
374
우리들은 그날 들은 단어의 뜻을 모른다
375
K 정말 단단하고 섬세하다. 스레주 말이 맞는듯.
진짜 강하면서도 섬세한... 상처받아도 잘 안 무너지는 타입이네.
이런 타입이 어렵지. 어떻게 다뤄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376
>>375
ㅇㅇ ㄹㅇ.. 상처 받는지 안 받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신경 써서 대해줘야 하는데 K는 또 대범하기까지 하잖아? 스레주도 골치 아프겠네.
377
>>376
골치 아프지는 않아. 옛날부터 저랬거든.
그러고보니 좋아하는거 양보도 잘했다.
378
>>377
최고 귀찮은 타입이잖아! 진짜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야한담ㅠㅠ
그 뒤로 A하고는 연락 안 했어?
379
>>378
어차피 K도 A가 한통속인 거 알았으니까 이제 대놓고 문자해도 되긴 해.
380
>>379
제발 대놓고를 그만둬주세요
381
A는 들킨 거 아냐 모르냐 아니지 모르겠지..
저런 상황을 어떻게 알아ㅠㅠ
382
>>381
말하기는 할 거야. 정보는 무조건 공유해야 하니까.
383
>>382
A도 멘붕이기는 하겠다. 잘 진행해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폭탄선언 뙇...
384
>>383
그런데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할지도? 이제는 B만 속이면 된다는 거잖아.
솔직히 K는 스레주나 A가 설득하기보다는 B가 설득하는 쪽이 훨씬 넘어갈 확률 높아.
원래 좋아하는 사람 힘이 와따임ㅇㅅㅇb
385
>>384
와따가 뭐냐 와따가 할매 인터넷 뚫은지 며칠 됐어!
386
>>385
으응? 잘 안들려! 좀 더 크게 말해봐!
387
>>386
할매! 글자인데 뭘 들어!
아 혹시 음성인식서비스 쓰세요?
388
>>387
짜잔~ 사실 할배였습니다.
389
>>388
으 이 개그 실패야 하나도 안 웃겨
390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개그를 친 것부터가 실패였다...
391
>>390
미안합니다..
392
K는 그래서 이 관련으로는 다시 말하지 말자 한 거야?ㅠㅠ
이제 어떡할 셈이야?
393
>>392
본인은 더 얘기하기 싫은 모양임.
이쯤 얘기했으니 얘도 잘 알아들었겠지 한 것도 같아.
394
>>393
그래서 지금 스레주의 속마음은?
395
>>394
K의 속마음을 읽었습니다.
B와 잘 되고 싶은가봐.
396
>>395
거의 인간날조 수준인데
397
>>396
그거 말고 다른 속내가 있겠어?
반드시 K와 B를 사귀게 할 거다.
398
스레주 행동력이 거의 터미네이터급임ㅅㅂ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이번에 시리즈 하차했다는데 스레주 거기 들어가라
399
>>398
무리. 난 너무 작고.
400
>>399
쓸데없이 현실적이잖아
401
그래서 K 집에는 진짜 어떻게 들어간건데?ㅇㅅㅇ; 난 그게 제일 궁금하다.
402
>>401
그냥 오늘은 같이 있자고 그랬다. 미래 얘기도 할 겸해서.
403
>>>미래 얘기도 할 겸해서<<<
404
스레주 제발 신칸센직구만은 안돼!
405
>>404
무슨 소리야? 아직 얘기도 안 꺼냈다.
K는 누워있고 나는 앉아서 폰하는 중.
406
K 기분은 어때보여? 많이 힘들어보이나? 당연하겠지만...
407
>>406
평소와 비슷하다. 뚱함.
408
>>407
이거 진짜 의미없는 질문인데...
K 뭐 닮았다는 얘기 듣는 동물 있어? 신상 캐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ㅇㅅㅇ;
사납다 뚱하다 그런데 매력은 있다 이러니까 생김새가 어떨지 궁금해져서 그래.
409
>>408
굳이 따지자면 라마 닮은 것 같기도.
410
예? 라마요?
411
우리가 아는 그 라마요?
412
스레주 솔직히 말해줘. K 귀엽지? 베이글남이지?
413
>>411
라마는 개체차가 심하다.
414
415
>>414
이거 닮음.
416
아니야.
41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친구잖아...!!!!!!!!!!
418
>>417
ㅇㅇ그래서 사실 나도 B가 K한테 왜 반한 건지 좀 의아함.
정말 잘생긴 외모는 아니거든.
419
대신 끝없는 인내심과 하해 같은 마음을 가졌잖냐.
420
시발 지금 내 환상 다 깨졌어 A는 잘생겼지?
잘생겼다고 해줘 부탁이야
421
>>420
잘생겼다고 말했는데.
422
>>421
감사합니다.
스레주 인증 받았으니 A 님 신자는 승천할 수 있음..
423
>>422
뭐야 이 주객전도
424
그나저나 K랑 얘기는 언제 해볼 셈이야?
그냥 이대로 폰만 하다 갈 셈임?
425
>>424
K랑 나는 어릴 적부터 정말 친했기 때문에 서로 허락 안 받고 자고 가는 정도는 언제든 할 수 있다.
시간과 의지 싸움이지.
426
의지...?
427
오늘은 이만 스레 나가봐도 되겠군.
스레주의 필패다!
428
>>426, 427
뭐야? 기분나쁘네. 나도 할 때는 하거든.
429
>>428
할 때가 언젠데
430
>>429
음... 아마 지금일까...
431
오늘자 스레 셔터 닫습니다.
432
그럼 지금 얘기하고 올게.
433
예?
434
아 시발 미안해 스레주 우리가 또 스레주를 과소평가했다 우리가 또 실수해버렸다
435
이놈의 입 입 입 입 입
436
방구석 히키코모리로 사느라 손가락만 빨라져서..
미안하다 K...
437
그런데 오히려 이러면 가능성 있을 것 같지 않냐?
K는 이미 B가 자기 좋아하는 거 안다잖아, 그럼 A랑 얘기 잘해서 B 컨트롤 잘하면 성사될 지도?
438
B 무슨 A의 아바타냐
439
>>437
나중에는 A가 B한테 직접지령 내려주는거냐
B 씨! 그쪽에서 턴하세요! 이런 식으로...
440
>>439
이게 더 안심되는데?
이따 스레주 오면 제안해보자
441
>>440
뭘 제안하냐 니트들아!
그나저나 K 진짜 신중하다 해야할지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 해야할지 모르겠네.
이렇게 주변 신경 쓰는 고등학생 남자애는 처음이야.
게다가 자길 어떻게 볼까도 아니고 B를 어떻게 볼까잖아, 진짜 남다르게 조심스럽다 해야 할지.
442
>>441
자기보호기제도 좀 있는 것 같기도 하고?ㅇㅅㅇ;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런데 내 생각보다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말도 그렇고 B가 애인 사귀면 보일 모습 보기 싫다 한 것도 그렇고 겁도 생각보다 많은 느낌.
스레주가 담대하다면 K는 이런 면에서는 소극적이라 해야 할까.. 애매하다. 모든 모습을 아는 게 아니니까.
443
이런 건 솔직히 우리끼리 얘기하기보다는 어른이 있어야 좋은데 둘 다 동성이라.
만약 동성이 아니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풀렸을 걸.
444
>>443
동성 아니었으면 고백박치기하고 끝났지 ㅅㅂ 스레까지 생겼겠냐
445
>>444
ㅇㅈ합니다..
446
A랑 상의를 해보는 쪽이 나을지도?
그래도 지금 키를 쥔 쪽은 K나 스레주가 아니고 B 같아 보이는데 차라리 앞서 말 나온 대로 B가 움직여보는 편이 좋을듯ㅇㅅㅇ;
K 백날 설득해봐야 조금도 안 움직일 걸. 저런 타입 친구 있어서 아는데 진짜 아무리 설득해도 까딱도 안함.
진짜 저건 상대가 움직여줘야 해. ㄹㅇ임 지장찍을 수 있다
447
>>446
엩 니 지장 어디 쓰는데ㅇㅅㅇ
448
>>447
아무 짝에도 쓰지는 못하지 그냥 기분이랄까ㅇㅅㅇ;
449
스레주 얼마나 기다려야 될까
450
>>449
방금 갔으니까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겠지?
쉽게 끝날 종류도 아닐거같고..
451
스레주 그래도 착한 친구임 이것저것 다 챙겨주려 노력하잖아.
나는 아무리 친해도 이렇게까지는 못해줄 것 같은데.
452
>>451
소꿉친구라잖냐. 한 10년 알았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듯...
게다가 K도 스레주 엄청 잘 돕는대고. 난 스레주 이해함ㅇㅇㅋㅋ
453
난 B 불쌍한거같음.
K한테 이러쿵저러쿵할건 아니지만 이미 거절당한거나 마찬가지잖아.
괜한 희망 품고 있을거 생각하면 으.. 울고싶다못해 어디로 사라지고 싶을듯ㅠㅠ
454
>>453
그건 너무 나간거 아님? K가 넘어올지도 모르고 아직 결말 난 거 아니잖아.
벌써부터 실패했다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예의 아닌것같은데.
455
>>454
그렇게 치자면 스레주가 계속 자기 의견 밀어붙이는거도 마찬가지지.. 아님? K가 싫다 그랬잖아.
456
>>455
그거랑은 좀 다르다 생각하는데.
K가 사랑 못 이루면 상처받을 거 뻔히 보이니까 나선 거 아냐.
괜히 스레주한테까지 덤핑씌우려는거 별로다.
457
>>456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과대해석은 하지 말아줄래? 불쾌한데.
458
아 또 왜 싸우냐 안그래도 스레주 머리 터질 것 같을 텐데 우리까지 이러면 어떡함?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잡담게시판에라도 가서 스레 파든지.
459
>>458
동의함. 남의 스레에서 개인쌈판 벌리는 거 존나 무례한 짓임ㅇㅇ
나가서 싸워.
460
>>458
그럴 생각은 없음.. 여기서 끝낼게 스레 분위기 흐려서 미안.
461
>>458
이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음. 미안해.
462
스레주가 말을 잘해야 할텐데.
스레주 진짜 다 좋은데 말투가 너무 세고 차갑다 해야 할까?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
463
>>462
텍스트라 그럴지도? 원래 텍스트가 더 세보이잖아.
게다가 이런 기본 글씨체에서는 더더욱.
464
>>463
그렇기도 하지. 그런데 질문 내용도 가끔 너무 세고.
465
>>464
난 반대의견이야.
K 같은 타입은 직구 날리지 않으면 우물쭈물하다가 꼬리까지 없애버려서 조금이라도 틈 보일 때 잡아야해.
안 상대해본 사람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게다가 스레주가 1판인가에서 말했잖아? 일부러 그러는 거라고, K는 잘 도망친다고.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닌듯.
466
>>465
ㅇㄱㄹㅇ임. 스레주 판단에 맡겨보자 일단.
스레주 아주 어린애 아니고 판단력도 좋으니만큼 최선을 찾을 것임.
467
다녀왔어. 또 엄청 밀렸네.
468
오 스레주! 어서 와!
469
생각보다 일찍 왔네! 한 40분 걸렸나ㅋㅋ 얘기 잘 됐어?
470
스레주랑 K 의외로 늘 속전속결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71
>>470
딱히 가릴 게 없으니까. 워낙 오래 안 사이다보니까 서로 숨기는 게 없어.
음... 아니야, 없다고 생각했지. B 건은 나도 놀랐고.
그래서 무작정 스레부터 세운거야.
472
>>471
그게 놀란 말투였냐
473
>>472
응.
474
스레주의 놀람 스케일이 남다르다
475
이거 뭐 석가면도 아니고
476
>>475
그건 죠죠잖아 철가면 아님?
477
그런데 스레주는 다른 의미로 인간을 그만둔 것 같긴 해 저 압도적 초연함
478
>>477
스레주 뇌잖아ㅇㅅㅇ;
479
>>478
으! 그 그로테스크한 묘사 그만두랬지!
480
>>478
뇌라고 하지 마. 기분 나빠.
481
K랑은 무슨 얘기했어? 미래 얘기? 아님 속마음 얘기?
482
천천히 적어볼게. 역시 전문을 적는 게 편하네. 요약에는 자신 없어.
483
그런데 정말 농담 아니고 잘됐으면 좋겠어. K랑 B 둘 다 안타까워.
솔직히 안타까움만으로 될 게 아닌 건 알지만 사랑하는데 상황 때문에 외면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부딪혀는 봐야지...
484
상황과 사랑 얘기는 진짜 이 스레 최고 도돌이인거같음. 그만큼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라는거겠지.
어쩌면 B 말대로 서양 가는 게 가장 굳초이스일지도 몰라.
B가 현명한지도?
485
>>484
맞아. 그냥 B가 프로선수 된 다음 해외진출하는 편이 훨씬 나을듯.
B 실력도 출중하다며. 그럼 해외 가서 사는 편이 낫지.
일본도 분명 선진국이지만 동성 관계 보는 시선은 유럽이나 미국 쪽이 더 나으니까.
486
그거 내세워서 한 번 설득해보라 그래, 스레주. A랑 얘기해보고...
물론 스레주가 우리보다 한참 잘 알겠지만ㅇㅅㅇ`
487
너희랑 얘기하고 아무래도 그냥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걸었더니 대답도 안 하고 자는 척하더라.
그래서 최후의 수단을 꺼냈어.
488
>>487
뭔데 시작부터 최후의 수단인데
489
깨우려는 시도는 좀 해봐야 하지 않냐
490
스레주 레알 터미네이터라고 하드보일드의 화신임 미소년이지만 하드보일드하다!
491
>>490
최근 예능이 좋아할 법한 카피라이트인데
492
>>491
스레주 예능 진출해볼 생각 없어?
493
다들 K 말 듣고 정신 나간 게 아직까지 안 돌아온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 정신차려!
494
나: B한테 지금 전화 걸려는데 상관 없지? 아무래도 미안하다는 사과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야.
K: 스레주 너 진짜.
나: 왜? 하기는 해야 하잖아. 이대로 넘길 수 있을 줄 알았어?
K: 만나서 사과해도 돼. 굳이 전화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나: K 너답지 않은걸? 사과는 그때그때 해야한다며. 그래야 앙금이 안 남는다며. 왜, B는 뭐든 워낙 잘 용서해주니까 이번에도 넘어가줄 것 같아?
K: 스레주.
나: 너무 안이하지 않아? B가 널 좋아한다니까 더 방자하게 굴어도 될 것 같아?
K: 스레주, 그만해.
나: B가 울었다는데도 아무 생각 안 들어?
K: 그 대답은 한 것 같은데.
나: 널 좋아해서 불쌍하다 했지.
K: 그래.
나: 걔를 구차하게 만드는 거 너잖아. 네가 영화만 봐줬어도 그렇게 불쌍해지지는 않았을 거야. B가 사람에 휘둘리는 게 불쌍하다 했지, 감정에 휘둘린 건 너야.
495
스레주 너무 셌다
496
아... 내 멘탈도 깎여 나가는 것 같아 원래 연애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인가요?
연애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나요?
497
내가 K였으면 진짜 울었어...
498
그렇지만 어떡해,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말이란 게 원체 한 번 뚫리면 계속 나가는 종류잖아. 계속 말했음.
나: 멜로영화도 같이 보는 친구가 되고 싶다며, 그런데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잖아. 여자친구를 사귀는 B가 상상돼 무서웠다고? B의 자상한 모습이 보기 싫었다고? K, 그거 다 네 욕심이고 자만인 거 알아? 어떻게든 맘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B까지 상처 입힌 거잖아. B가 너 좋아한다는 거 알면서 억지로 단념시키려는 의도가 만만하잖아. 어차피 그 옆자리는 네가 될 수 없다니 보지조차 않겠다고 혼자 멋대로 결정한 거잖아. 옳다고 생각해? 그게 정말 K, 네 행복이야? 네 마음을 인정하지 않아 다른 사람까지 상처입히는 게? 너도 슬플 거고 B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해. B가 웬만한 애야? 그 사람은 너보다 더해, 한 번 목표한 건 꼭 가져야 성이 풀리는 사람이잖아. 이건 소모전이나 마찬가지야. 차라리 받아들여, 고등학교 시절에는 사귀어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냥 친한가보다하겠지. 그러다 헤어져도 괜찮은 거잖아, 맘 더 깊어지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봐도 되는 거잖아. 지구상에 국가가 일본만 있는 줄 알아? 미국도 있고 유럽도 있지, 좀 더 넓게 볼 수는 없어?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거야? K, 정말? 너는 정말, 지금 이대로 괜찮아? 아니잖아, 후회할 거면서.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는 게 네 지론이었잖아, 후회할 짓을 왜 하려 해. B를 그렇게 사랑하면서, 너 자신을 버릴 정도로.
499
K는 정말 화냈어.
500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들어줬으면] 내 친구가 짝사랑 중이야 [좋겠다] 9
1
다들 눈치 보는 것 같아서 내가 판 갈았다ㅇㅅㅇ;
하여튼 새끼들 존나 게을러
2
그래 판 갈았으니까 자러 가자ㅇㅇ 스레주도 간 모양인데
3
>>2
미친 존나 빨리 대화 종결 지어버렸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3
그럼 스레주가 없는데 우리끼리 뭘 해 ㅇㅅㅠ
5
아 판 갈렸네? 전 판에 댓글 안 달려서 우리집 인터넷 끊긴 줄ㅋㅋ
잉여는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어요!
6
>>5
이참에 밖에도 나가보고 좀 그래
7
>>6
ㅇㅅ"ㅇ대학 멀쩡히 잘 다니고 있거든 새끼야ㅇㅅ"ㅇ
8
>>7
헐 대학생이라니 리얼충이네
9
>>8
대학생인 정도로 리얼충이라니...
자고로 리얼충이란 대외활동도 빡세게 하고 여친도 사귀고 그러는 애들 말하는 거 아니었냐
10
>>9
우리 기준에 뭘 바라냐
11
그냥 대화 이어나가는 분위기인 거야?
나 B랑 K 데이트 좀 걱정인게 샐리의 다이어리 레알 보통 재미없는 수준이 아니래서;
진짜 둘 싸우는거 아냐?
12
>>11
보통 좋아하는 사람하고 영화 보러 가면 영화 내용은 잘 파악 안 되지 않냐? 그냥 적당히 설레는 영화인줄 알고 나올거같은데ㅋㅋ
B가 소소한 스킨십도 하고 그럴거아냐 별로 걱정할 필요 없을듯?
B가 너무 갑자기 들이대지 않는 이상ㅋㅋ
A한테 조언 들었으니까 너무 확 들이대진 않겠지ㅇㅅㅇ
13
>>12
B 존나 신칸센 같은 남자인거 잊었냐
14
>>12
난 A가 변장하고 따라가줘야 한다고 본다 존나 진지하게
15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
둘 다 속도 깊고 상대 배려도 잘해주는 애들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맞짝사랑으로 끝내기는 너무 아까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6
>>15
대외적 시선 같은 거 생각하면 아깝다고 밀고 나갈 건 아니긴 해.
난 A랑 스레주 염려도 일리 있다고 봄ㅇㅇ 말마따나 우리나라 아직 게이에 그렇게 관대하진 않고...
그리고 둘이 그냥 일반인으로 살아갈거라면 모를까 B는 배구선수가 목표라며?
배구가 그렇게 메이저 스포츠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스타플레이어면 말이 달라지니까.
17
뭐야 또 현실얘기로 들어감?
현실 얘기 전판에서 끝난 거 아니었어?ㅇㅅㅇ;;;
18
>>17
원래 이런 스레드가 그렇지 뭐.
좋다고 얘기하다 갑자기 진지한 얘기 나오고 현실 얘기 나오고
19
진심 돌림노래인 줄 알았다 전판 들어온 줄
20
몰라! 난 그냥 둘 응원할 거야!
둘이 존나 잘됐으면 좋겠다! 사귀고 게이월드로 갔으면 좋겠다!
21
그런데 진짜 B 말대로 B가 해외진출 성공하면 거기로 가도 되잖아?
스포츠 관심 없어서 배구 잘 모르지만 서양쪽은 그래도 게이에 관대하니까?
해외진출 노리는거 보면 실력도 좋은것같고
22
>>21
진짜 보통 좋은 게 아닐걸?
고교에서 손꼽히는 에이스일지도...
23
>>22
신상 털면 안되는거 알지?
이렇게 신상 유추할 수 있을 만한 말 하지 말자 익명 기반이잖아
24
>>23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안;
손가락 조심하겠음
25
그나저나 스레주는 어떻게 말 꺼내려는 걸까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이제 스레주가 뭐 하겠다고 그러면 불안하기부터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6
>>25
적어도 우리보단 똑똑한 것 같으니깐 알아서 잘하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7
>>26
맞아 막 돌직구 날리고 애 재기불능으로 만들고
28
>>27
시발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9
180cm 넘는 건장한 남자애들 둘이 손 잡고 멜로 영화 보러 들어가는거 생각하니까 존나 숨막혀..
30
>>29
존나 누가 봐도 게이다 게이
31
>>30
돌직구를 쌈에 싸서 드셔보세요!
32
>>30
이미 존나 많이 먹었다 스레주가 몇 천 레스 째 먹여주고 있잖냐ㅡㅡ
33
K의 재밌음 허들이 존나 낮길 바라본다.
의외로 데이트 가서 영화 유심히 보는 애들 있다
34
>>33
맞아 내 친구의 친구도 남친이 추천한 영화가 너무 노잼이라서 깨졌댔음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5
>>34
존나 모모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시간도둑인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6
>>34
제발 K가 그런 사람 아니길 바란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도 갈 사람이었으면 좋겠네
37
>>36
스레주한테 뒤지고 싶냐
38
>>37
스레주님 증말 죄송합니다.
39
>>38
너 때문에 흥이 깨졌잖아, 책임 져!
40
>>39
네, 알겠습니다.
41
시발 스레에다 브금 깐 새끼 누구야 당장 수정해라
42
>>40
너때문에 흥이 진짜 깨졌잖아
43
>>42
진짜 미안하다 밤이라는 걸 깜박함...
44
>>43
밤 아니어도 깔면 안 되지..
45
그런데 B 진짜 귀엽지 않냐? 나 K가 왜 B한테 반했는지 알 것 같더라.
게다가 의외로 생각도 어른스럽고.
뭐랄까 든든한 남자애 느낌?ㅋㅋ
K가 철벽 안쳤으면 좋겠다
46
>>45
K는 그냥 존재 자체가 철벽 같던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투비 철벽
47
>>46
ㅇㅇ맞아 스레주도 그렇지만 K도 만만찮게 철벽임ㅋㅋ
오히려 K 벽이 더 높을지도....
48
하긴 우리 K 철벽 진짜 근 세 판에 걸쳐 느껴왔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긴장되니까 별 소리를 다 하게 되네.
난 이만 자러 간다! 스레주 없으니까 할 얘기도 없다.
잘 자고 스레주 오면 나 불러라ㅇㅅㅇ
49
스레드에도 범펍 알림 설정 같은거 있었음 좋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0
다들 슬슬 해산하는 분위기네ㅇㅅㅇ; 나도 이만 가야겠다.
B 진짜 괜찮은 애 맞음 ㅇㅈ함.
존나 쟤가 좋은 남자 아니면 일본에 좋은 남자 하나도 없다
51
>>50
토요일에 B가 망언하면 모두 나쁜남자 되는 거냐
52
>>51
B에게 일본 남자의 명예가 걸려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3
어이 B! 나는 이미 나쁜 남자지만 잘 하라고, 다른 사람 명예가 걸려있다!
54
>>53
넌 왜 나쁜 남자냐
55
>>54
니트라서
56
>>55
존나 나쁜 새끼네 나가서 일자리 구해라
57
나도 자러 간다, 안녕!
58
스레 셔터 내린다~! 스레주 오기 전까지는 범펍하지 말자ㅋㅋㅋ
아니 잠깐만 스레주 이 스레 주소 모르잖아ㅇㅅㅇ;
아침 점심 저녁으로만 범펍하자
59
>>58
스레주가 제대로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라야하는 스레드는 처음이다 진짜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65
아침 범~펍~!
66
>>65
이새끼 얼리버드네 야 지금 아침 7시 반이거든 시발 지금 범펍하면 어떡해
67
>>66
그러는 너도 얼리버드잖아ㅇㅅㅇ;
일어나 있었네ㅇㅅㅇ;
68
>>67
밤 샌 거랍니다...
69
>>68
미안하다.............
70
그런데 스레주 가끔 일찍 들어올 때도 있었잖아ㅇㅅㅇ;
혹시 모르니까 대비해두는 거라고 하자
71
>>70
자기합리화 갑이다 쩐다
그런데 나도 동의하긴 함ㅇㅇ
스레주 왔다 가는 것보다야 좀 일찍 범펍하는게 낫지ㅋㅋ
72
아 진짜 너무 떨린다
73
>>72
나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스레주가 잘 해야할텐데.
이번에 또 돌직구 날리면 걔 진짜 달팽이처럼 숨어버릴것같아서.
K 되게 센서티브한 애 같다고
74
>>73
ㅇㅇ일정치 이상 건드리면 존나 숨어버릴 듯한 느낌? 저런 타입 진짜 다루기 어려운데.
그나마 스레주는 소꿉친구라 일정 선 이상 건드려도 좀 봐주는것같고..
역시 소꿉친구 특권 대단하다
75
화 유이리 같은 느낌인가
76
>>75
카미유는 화한테 화냈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따지자면 프라우 보우 아니냐
77
>>76
에엩 하지만 걔는 상냥했다구
78
미친 건덕들아 아침부터 무슨 대화하고 있는거야 남의 스레에서ㅇㅅㅇ;
얼른 건담 스레드로 꺼져!
79
범펍돼 있길래 스레주 온 줄 알고 헐레벌떡 들어왔더니 건덕들이 있었네.. 기운빠진다..
80
스레주 저번에 아침 몇 시쯤 왔지? 9시 반이었나?
81
>>80
뭐 그 쯤?
그런데 오늘부턴 좀 뜸하게 온댔으니까 더 늦을지도ㅇㅅㅇ;
82
이제 가라앉혀 두자
적당히 서치해서 찾아오겠지 스레주
83
>>82
지쳤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4
>>83
스레주 없이 지금 잡담으로만 거의 100레스 왔단 말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가라앉혀 두자는 거지ㅋㅋㅋㅋㅋ
85
>>84
일리있는 말이다 가라앉혀두자
86
좋아 그럼 점심때 보자!
스레주 잘하고 왔으면 좋겠다
87
왠지 아침범펍은 안해도 될 듯한 느낌..
-
91
점심범펍!
92
>>91
오 어서 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 잘 먹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3
>>92
아니 잘 못 먹음 갑자기 부장이 같이 점심식사하자 그래서 얹힐 뻔함ㅡㅡ;
94
>>93
헐 부장ㅇㅅㅇ;
뭐 먹었어?
95
>>94
곤드레나물밥...
96
>>95
우와.......
97
>>96
제발 식사 혼자했음 좋겠고
98
엥 곤드레나물밥 맛있지 않음?
난 존나 좋아하는데
99
>>98
난 걍 전반적인 나물류를 싫어함
100
우와 이렇게 영양가 없는 100레스도 오랜만이네
스레주 없이 이룩한 100레스 모두 잉여들에게 박수를~!
101
너희 뭐 하냐?
102
>>101
헐 스레주야???
103
스레주 왔어? 스레주 맞으시죠?
스레주 식사는 하고 온 거야? 하긴 벌써 2시긴 한데
104
저런 말투 쓰는 사람은 이 스레에 딱 한 명밖에 없어!
바로 스레주!
105
>>103
ㅇㅇ밥 먹고 옴.
오늘은 K랑 같이 안 먹고 다른 배구부원이랑 같이 먹었다.
>>104
그딴 말 그만둬. 눈에 띄는 거 싫어해.
106
>>105
싫어한다고...?
107
>>105
역시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안 믿기는 말이다
108
>>106, 107
믿어. 본인 말이니까.
109
>>108
그렇지 본인은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미안합니다...
110
스레주, 오늘 K랑 만났어? 얘기는 해봤고?
점심 같이 안 먹었다니까 또 걱정되네ㅇㅅㅇ;
111
>>110
같이 등교한다 그러지 않음?
점심이야 같이 안 먹었어도 당연히 만났기야 했겠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기 꺼내봤어?
112
스레주 우리 판 갈아놨어 칭찬해줘
113
>>112
ㅇㅇ수고함
114
>>113
이게 다인가
115
>>114
???정말 수고했어
116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7
스레주의 시크함이 상상초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레주 태도 때문에라도 이거 명예의 전당 갖다놔야 한다
118
어이 B, K! 잘해보라고!
너희 태도에 명예의 전당이 달렸어!
119
>>118
K 실존인물이고 내 친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지.
120
>>119
죄송합니다...
B 힘내봐!!!!!!!!!!!!!!!
121
>>120
B는 힘내야 돼
122
스레주 존나 냉정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23
오늘도 B에게는 가차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스레주 얘기는 잘 됐어?
124
>>123
이새끼 거의 미저리다
125
오늘은 돌직구 안 날렸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우선은 이게 아니라... 걔랑 만나긴 함?ㅠㅠ
같이 가긴 했어?
126
하나씩 답해보자면
1. 만났어. 원래 옛날부터 싸우더라도 학교만큼은 늘 같이 갔다.
2. 얘기는 했다.
3. 잘 됐는지는 모르겠음
127
스레주가 저렇게 말하니까 진짜 불안하다;
도대체 어떻게 말했어? 진짜 직구 날린건 아니지?;;
B가 너랑 해외 가고 싶대!!! 그랬다거나ㅇㅅㅇ;
128
>>127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
129
>>128
그럼 B가 너랑 왜 영화를 보는지는 아니...?
130
>>129
너희 날 도대체 뭘로 보는 거냐.
불쾌해.
131
>>130
미안해 장난 안 칠게.
그런데 여태까지 네가 계속 저런 식으로 말했잖아..
132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K랑 만나서 학교 가는데 K가 그러더라고.
아 이건 그냥 예전처럼 말만 적을게.
설명하기 귀찮다.
133
>>132
역시 나 스레주가 이 스레 세운 의도 모르겠다
134
>>133
들어달라고
135
나: K, 안녕.
K: 어, 스레주. 오늘은 늦잠 안 잤네.
나: 나라고 늘 늦잠 자지는 않아. 그나저나 K, 너 오늘 안색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어? 아침 먹은 거 얹혔어?
K: 오늘 아침 안 먹었는데ㅋㅋㅋ
나: 어제 저녁이 얹혔나?
136
K 도대체 얼마나 건강체질이면 저런 걱정밖에 못 듣냐
137
그런데 스레주가 걱정해준거 보니 진짜 아파보였던 모양이네.
감기라도 걸린거야?ㅠㅠ
138
K: 안 얹혔어. 소화 잘 시켰습니다~
나: 응. 토요일까지 컨디션 관리 잘해야지, 너.
K: 아, 토요일.
나: 응. B랑 영화 보러 간댔잖아.
139
아 시발 불안한데
140
>>139
그딴 말하지 말라고
141
여기서 K는 뜸을 들였다.
K: 역시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약속 취소했어.
나: 왜? 왜? 왜?
K: 그렇게 보지 마, 무섭다고~ㅋㅋ 그냥.
나: 세상에 그냥은 없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야? 너 멜로영화도 같이 보는 멋진 친구로 남고 싶다 그랬잖아.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42
진짜 시발이다
야 원래 남고생들 연애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냐
143
>>142
아무래도 사회적 시선이ㅇㅅㅠ 그렇지..
144
아니 왜 안 본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화 같이 보는 게 어때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45
나: 대답해, K. 왜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겼냐고.
K: 샐리의 다이어리 재미 없다더라.
나: ...
K: ...
나: 너 진짜 짜증나.
K: 원래 짜증나는 사람이랍니다.
146
아 진짜 K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정말
147
그래서 안 보겠다는 진짜 이유는 못 들은 거야, 스레주?
갑자기 왜 저러는데 쟤
148
야 나 고구마 3048193274803억개 먹은거같음
사이다 어딨냐 사이다
149
>>148
지금 여기 고구마 풍년이거든 감히 어디서 사이다를 찾느냐
150
씨발 고딩들 풋풋한 연애 잠깐이나마 상상했던 내가 멍청이였다
K AT필드 개쩐다
151
저 친구야말로 LCL이 될 필요가 있는 자다
152
스레주, 그래서 레알 이유는 못 들은거임? 존답답
153
>>152
나 폰이라고 몇 번 말했던 것 같은데.
154
>>153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 사드릴까요?
근처 지하철 락카 번호 대봐라 하나 쏴 줄 테니까
155
>>154
필요없고
156
>>155
아니요 스레주님 저희가 필요해서 그래요 저희가
157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학교 들어가기 직전에서야 다시 말을 꺼냄.
나: 진짜 할 말 없어?
K: 스레주. 이건 네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 그렇다고 숨길 필요 있는 일도 아니지.
K: 스레주.
나: 왜 숨기는 거지?
K: 스레주.
나: 감정 문제라 그래? 대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너 어제까지 폼 잘만 잡았잖아. 내가 부추겨도 아무 말 안했잖아.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뭐야?
K: 스레주, 좀.
나: 내 이름 그만 불러, 내가 너희 집 고양인가 K?
K: 아. 좀.
158
와 시발 K도 개빡친것같은데
159
분위기 개살벌해ㅠㅠ;
스레주 어디 맞진 않았냐
160
난 솔까 180 넘는 남자애가 내 앞에서 저렇게 화내면 못 서있을거같아 무서워서;
161
B한테서 무슨 연락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저럴 이유 없잖아
162
스레주 진짜 블투 키보드 안 필요하냐 우리 집에 안 쓰는 5천엔짜리 블투 키보드 있는데 존나 새거거든 지문도 안 남았거든 갖다 쓸래?
163
>>162
야 나는 새로 사줄 수도 있어 주소 불러
164
나: 이제 그런 거 안 통해, K. 내가 언제까지 어린애일 줄 알아? 나도 이제 네 고민 정도는 들어줄 수 있거든, 왜 갑자기 맘이 변했냐고.
K: ...
나: K, 좀은 내가 해야 할 말이야.
K: 스레주.
나: ...
K: 나중에 말할게...
나: 이 상태로는 연습 못 해.
165
그러고 오늘 연습 안 갔어.
166
>>165
자연스럽게 연습을 띵까먹었는데
167
>>166
오늘은 까먹을래서 그런게 아닌것같은데 이런 말 자제하는게 낫지 않겠냐ㅇㅅㅇ;
168
>>167
연습 안해서 좋긴 했다.
169
스레주 미친놈아
170
하지만 열받은건 진짜야.
한 살 어리긴 하지만 그런 배려 받을 정도로 이제 어린 것도 아니고 고작 한 살 차이고.
언제까지 어린애로 볼 건지 모르겠네.
171
하긴 겉으로는 동등하게 대우해주면서 은근 동생 취급하는거 보이면 짜증나지...
스레주 이해함ㅇㅇ 열받을만 했어ㅇㅇ
게다가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저러니.
난 오히려 스레주 잘 참은거같아 대박 인내심이다
172
그래서 오늘 아침 얘기는 이걸로 끝이야?
아 고구마 시발..
173
끝 아님.
174
?????????????????????????????
175
끝 아니라고?
176
녹취록 정리하고 있어서 좀 느려.
A랑 전화했다.
177
아 맞아 약속 없어진 건 B도 마찬가지지ㅇㅅㅇ;
B는 어떻대냐;
178
기다릴게 여기서 평생 기다릴게 스레주 돌아오기만 해줘...
179
블투 키보드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고..
180
A한테 전화했는데 A도 무슨 일이냐며 좀 당황한 눈치더라.
그쪽은 B가 컨디션 난조로 오늘 연습에서 빠졌다고 했음.
도저히 연습할 컨디션이 아니어서 그냥 반으로 올려보냈다더라, 이따 오후에 보자고.
181
아이고; B 불쌍해서 어쩌냐ㅠㅠ;
하긴 걔도 존나 충격받았겠지 갑자기 좋아하는 상대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했으니...
182
>>181
아직 누가 약속 취소한 건지는 안 나오지 않았어?
뭔 일 있었는지도 모르고
183
>>182
B가 취소한 거면 저렇게 충격을 받았겠어?
빼박 K지
184
>>183
ㅇㅇ나도 이 쪽. 이건 물을 필요도 없이 K임...
아 속탄다 나 물 좀 가져오겠음
185
>>184
물로 되겠냐 사이다 1.5페트로 사오셈ㅇㅅㅇ;
186
>>185
캔 박스로 사올 거다
187
>>186
이자식 스케일 커
188
>>187
아니야 쟤가 현명한걸수도 있음 이 스레 앞으로 우리한테 고구마 8702743748930억개 더 먹여줄것같다
189
나 지금 옥션에서 사이다 두 박스 시켰다
190
이것도 말만 올릴게.
나: 안녕하세요, A 씨.
A: 안녕하세요. 거두절미하고 묻겠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갑자기 K 씨가 약속을 취소하신 거죠?
나: K가 약속을 취소한 게 맞지요?
A: K 씨가 B 선배가 약속을 취소했다고 그러덥니까?
나: 아니요,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
A: 그렇군요.
191
고등학교 2학년생들이 >>>사실관계 확인<<<
192
보통 호감 가진 상대들 사이에 문제 일어나면 서로 머리채 잡을 기세로 쏘아붙이지 않냐
쟤네 둘은 대체 뭐냐ㅋㅋㅋ
193
>>192
말로 머리채 잡고 있잖아
194
이 와중에도 A 섹시하다
195
>>194
ㅇㅇA 존나 엘리트섹시임
나 A 어디 대기업 회장 아들설 민다
196
A: 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은 들으셨습니까? 저는 전혀 감 잡히는 구석이 없어서요.
나: 저도 얘기를 못 들어서. 혹시 B 씨 얘기를 먼저 들을 수 있을까요?
A: 그럼요, 들려드리죠. B 선배가 아침에 울면서 하소연하고 가셔서 똑똑히 기억합니다.
197
울었냐
198
시발 벌써 실연당한건가 데이트 해보기도 전에
199
>>198
불길한 소리 자꾸 하지 말라고ㅡㅡ
200
B 레알 가엾고 불쌍하다ㅠㅠ
201
A가 한 말도 대화 형식으로 풀어 쓸게.
이 대화는 B하고 A가 한 거라고 봐주면 좋겠다.
아침에 A가 학교에 왔는데 B가 탈의실에서 울고 있더래. 그
래서 당황해서 토요일에 K 씨 만나기로 하신 분이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십니까, 그랬다나봐.
202
불쌍한... B...
204
180 덩치가 탈의실에서 울고 있었다는데 왜 귀엽냐; 나 B한테 부성애 느끼는 것 같아
205
>>204
부성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6
>>205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봐..
207
그랬더니 갑자기 B가 A를 꽉 붙잡더래. 계속 울면서.
B: A, 나 어떡하지?
A: 네?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 무슨 일 나셨어요? 얼굴이 엉망입니다.
B: 어허허헝
A: 울지 마세요 못생겨지면 여자애들이 안봐줍니다.
B: 지금 여자애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208
A 엄마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9
>>>>>울지 마세요 못생겨지면<<<<<
210
저게 달래는 데 쓸 말이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씨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11
A: 네?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
B: K가, K가 나랑 영화 못 보겠대~!
A: 예?
B: 영화 볼 마음이 안 든대, 어쩜 좋아? 나 어떡해야하지? 내가 매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샐리의 다이어리가 너무 재미없다는 소문을 들어버려서? 나랑 왜 영화 안 본다는 걸까? 나는 K랑 영화 보고 싶은데! K는 내가 싫은 건가?! 마음이 안 든대, 어쩜 좋아? 나 어떡해야하지? 내가 매력이 없는 건가? 아니면 샐리의 다이어리가 너무 재미없다는 소문을 들어버려서? 나랑 왜 영화 안 본다는 걸까? 나는 K랑 영화 보고 싶은데! K는 내가 싫은 건가?! 사실 날 싫어하는 사람은 스레주가 아니라 K였나?!
A: 아니요 그건 아닐 테니까 진정하세요, B 선배.
B: 안 그러면 왜 나랑 영화 보는걸 취소하냐구! 어제 갑자기 연락 와서 못 보겠다고, 너랑은 못 보겠다고... 혼자 실컷 샐리 보고 오라고... 난 샐리한테 관심 없어!
212
샐리 일기 한 번 잘못 쓴 죄로 몇 번 등판하는 거냐
213
B 존나 귀여운데 K 진짜 핀치에 몰려서 저런 말 한 것 같은데
214
>>213
222 나도 여기 동의ㅇㅅㅇ;
저거 K가 자기 맘 드러낸 거잖아...
A는 캐치하지 않았을까;
215
A: 진정하세요 선배, K 씨는 선배를 싫어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 겁니다.
B: 싫어하는 게 아니면! 싫어하는 게 아니면 왜 저런 말을 해? 왜 나랑 영화 보기 싫대? 같은 공간에도 있기 싫다는 거야? 으앙!
A: B 선배, 점잖게 웁시다
216
점잖겤ㅋㅋㅋㅋㅋ웁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17
힝입니다 냐고ㅋㅋㅋㅋ
218
B: 슬픈데 어떡해! A, 진짜 왜일까? K 진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그거 외에는... 그냥 나랑 영화 보기 힘들겠다는 말밖에 안 했어. 어떡하지? 전화해볼까?
A: 아니요, 하지 마십시오. 음... 제가 연락해보겠습니다. 지금 선배가 연락하시면 역효과 날 수도 있으니까.
B: 진짜?! 진짜? 해줄 거야, A? 우와, 역시 A밖에 없어! 고마워.
A: 제가 어떻게든 해드릴 테니까...
라고 했다고 한다.
219
스레주가 아주 적당한 시기에 연락했네
220
>>219
ㅇㄱ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스레주가 안했어도 A가 먼저 했을듯ㅋㅋㅋ
B가 저렇게 고마워하고 감격하는데 해야지 뭐 어떡해...
221
>>220
이 스레놈들 다 B 팬 된 거 아니냐
222
B의 경기 보러 가고 싶네요 팬으로서
223
어쨌든 더 얘기하진 않았어.
K한테 얘기 듣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지금은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224
>>223
ㅇㅇ잘 생각했음 괜히 헛방 날리기보다는 확실한게 낫지.
225
>>224
헛방이라고 하니까 스레주의 돌직구가 또 떠오르네
226
>>225
무시무시하지 그거
227
그래서 오늘 K만 연습하러 간 거야, 스레주?
228
>>227
아니 나 빼고 다.
229
>>228
저기요 심장 양반 이러시면 안되죠
230
>>228
자꾸 뇌 겸 심장이 탈주하시면 어떡합니까
231
으 존나 그로테스크하다 시발
232
>>231
넌 뭘 상상한 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33
>>232
문자가 좀 그로테스크하지 않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34
연습시간 지나서 돌아올게.
235
>>234
?????
236
>>235
연습시간... 지나서...? 너무 빠르지 않아?
237
스레주 잠깐 가지 마봐 너 또 몇 km 직구를 던지려 그래 그러지 말자 우리!!!!!!! 스레주님!!!!!!!!!!!!!!
238
난 미리 K한테 애도 표해야겠다 숙연하게
239
과연 게이직구 이상의 직구가 나올 것인가
240
>>239
안나오길 빈다...
진짜 K 멘탈 지금 장난아니게 갈린 상태 같아서
241
>>240
22222 잘못하다간 레알 큰일날수도 있음ㅇㅅㅇ;
스레주식 접근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해
242
나도 지금 너무 답답해서 스레 나가 있을란다..
저녁시간 지나서 오겠음
243
헉 벌써 2시 반이네 퇴근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집중해서 일하고 와야겠다
이따 봐ㅋㅋ
244
이 스레에 의외로 리얼충들 많잖아ㅇㅅㅇ;
니트들이라고 칭하면 안되겠는 걸
245
>>244
마음만은 다들 니트거나 니트워너비들이니까 상관없지 않냐
246
>>245
맞아 돈 벌어서 풍요로운 니트 되는게 꿈이라고
247
>>246
70살 쯤에 가능하겠네..
248
>>247
그 전에 과로사하지 않는다면 말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49
여튼 나중에 보자~
스레주도 연습 끝나고나 온다니깐
250
>>249
난 스레주가 연습 참여한다 하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어
251
>>250
팀의 심장이자 뇌인 분이시라고!
252
>>251
역시 이 비유 그로테스크해...
-
259
저녁 범펍
260
완전 칼이다 칼 지금 딱 6시잖아
261
야 너무 일찍 범펍했어 스레주 연습은 보통 8시 반쯤 끝난댔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우리끼리 얘기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262
>>261
헐 그럼 가라앉혀두자ㅇㅅㅇ;
나 범펍한 놈임
263
>>262
존나 호쾌하다
264
스레주가 얘기 잘 해야 할 텐데...
민감한 화제니만큼...
265
>>264
난 스레주 믿음ㅇㅇ
게다가 소꿉친구라니까 뭣하면 주먹이라도 부딪히지 않겠냐
266
>>265
스레주 병원가는 거 아냐?
267
>>266
맞아 그래서 스레 버려지고
268
폭력은 나빠! 아버지한테도 맞아본 적 없는데!
269
>>268
그런데 스레주는 레알 아버지한테도 맞아본 적 없을거같음
270
>>269
ㅇㅇ레알 전제군주 느낌ㅇㅇ
뭔말인지 알겠음
271
니들 존나 자연스럽게 옆으로 잘 빠진다.
272
>>271
무슨 그런 칭찬을...
273
>>272
자식들 눈치도 없고.. 이런 니들이 좋다
274
너희는 왜 너희끼리 늘 사랑하고 있는 거야?
275
????????????????????????????스레주?????????????????????????????
276
헐 스레주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아직 6시 40분밖에 안 됐는데
277
>>276
당연히 연습이 일찍 끝나서지.
K가 자꾸 위험한 실수 연발해서 D가 연습 종료시켰다.
D는 우리 팀 리베로고 K랑 학년이 같다.
278
너희 팀 진짜 민주적이구나...
뭔가 팀원들한테 비슷한 권력이 있는 것 같네
279
>>278
F한테는 없어
280
>>279
스레주 F한테 왜 그러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81
솔직히 F는 땅 치면서 울어도 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82
그래서 지금 집이야?
283
>>282
K네 집
284
K네 집이라고?
아 하긴 소꿉친구랬지ㅇㅅㅇ;
285
K한테 이유는 들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86
>>285
오면서 대강. 좀 짜증나는 이유였다.
정리해서 올릴게.
287
이제 스레주 우리가 올려 달라 안해도 올려주겠다고 해주네 존나 감격이다
288
스레주 이제 집이니까 컴 쓰겠지?
289
>>288
K 집이라 계속 폰임.
좀 느리니까 기다려
290
>>289
K는 왜 노트북도 없고 그러냐
291
얌전히 기다릴게 스레주
블투 키보드 주문할 준비 돼있으니까 언제든 말만 해라
292
K는 오늘 평소 안 하던 실수들을 연발했어.
결국 D가 너 집에 가서 쉬는 게 낫겠다고 했을 만큼.
그래서 같이 집에 오다가 다시 얘기를 꺼냈다.
나: K, 너 말이야. 대체 무슨 일이야? 왜 B랑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거야? A 씨가 나한테 연락했어. 네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해서 B 씨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도대체 왜 그런 거야?
K: 울었대?
나: 응. 그 정도도 짐작 못 했어? 너답지 않은데.
K: 여기서 나 다운게 뭔데, 라는 대사 해줘야겠지?
나: 아니.
K: ㅋㅋㅋ
293
뭔가 존나 폭풍전야 느낌이야
294
K도 스레주도 열받아 있는 느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95
K: A가 뭐랬어?
나: 네가 B 씨랑 영화 못 보겠다고 그랬다며, 볼 맘이 안 든다고 너랑은 못 보겠다고.
K: B 엄청 입 싸다
나: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너보다는 나아.
K: 우와, B 편 들어주는 거야? 내가 엄청 잘못하긴 했나 보네.
나: 알긴 아네?
K: 알지.
나: ...
K: 그래도 못 보겠더라고.
나: 왜?
K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296
나라도 쉽게 말 못했을듯... 끙...
297
아 속타는데 저 기분 알것같아서 더 속타
298
그래도 K는 스레주 같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인지도; 친구가 대신 사이다잖아
299
K: 액션이었으면 봤을지도 몰라.
나: 그런데?
K: 어제 영화 내용 검색해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남자 주인공에 B가 겹쳐 보이면 어떡하지? 언젠가 B가 여자친구를 사귀면...
나: ...
K: 그럼...
나: ...
K: 그 남자주인공 같아지겠지?
나: ...
K: 걔, 분명 로맨틱할 거야.
나: 그래서 취소했어?
K: 내 생각보다 난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 스레주.
나: ...
K: 그리고 생각보다 B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300
멍청이라고 생각했어
죽어가는 사람들
어느 날 이름이 나타났다. 손목 딱 한 마디를 덮는 길이였다.
죽어가는 사람들
왼손목이 불타오르는 듯 따끔거려 혹시 어제 연습 때 삐끗한 게 덧나기라도 했나 벌떡 일어나 불을 키자마자 바로 환부를 체크한 보쿠토는 상처보다 더한 것을 봐야만 했다. 다른 남자애들보다도 훨 두꺼운 손목 한 지름 가득 꺼먼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뭐야 이거? 반대쪽 손목도 내려다봤지만 이쪽은 자기 전과 똑같이 맨들맨들하기만 하다. 허옇게 빛나기까지 하는 게 정말 어제와 전혀 다를 게 없어 그저 애꿎은 왼손목만 이리저리 돌려보다 다시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허연 등 번쩍거리는 천장만 물끄럼 응시했다. 손목은 여전히 화끈거린다, 그 운명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만 아니었더라면 너무 뜨겁다며 울음 터뜨렸을 만치 아팠다. 거멓게 새겨진 쿠로오 테츠로라는 이름자는 선이 굵직한데다 획이 복잡하기까지 한 게 어딜 봐도 여자 이름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남자 같지, 갑자기 숨구멍이 꽉 막혀 푸우, 푸우, 연거푸 한탄을 빼봤으나 시원해지기는커녕 너무 많은 산소를 들이마셔 되레 두통이 났다. 으으, 진짜 머리 아파. 왜 하필 남자야? 머리가 어디 철창에라도 끼인 마냥 콱콱 아파와 웅크린 그대로 애꿎은 침대만 퍽퍽 쳐댔다. 물론 남자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이성혼과 동성혼 수가 거의 비슷해졌을 즈음 태어난 보쿠토는 그런 데 편견이 전혀 없었다. 그렇대도 역시 개인적인 호오는 있는 법이다. 부드럽고 여린 살과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귀여운 여자가 좋아 제 운명이 제발 저 같은 굵은 팔뚝을 지니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귀여움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사실 키가 이 쯤 크니까 모두 귀여워 보여! 여자들 다 엄청 귀여워! 그러니까 제발 부드러운 피부만이라도! 아니, 아니 그것도 안 바라! 그냥 여자기만 해다오! 벌써 꼬박 1년을 그리 생각하며 잠들었건만 이 운명이라는 거대한 존재는 그 작은 바람마저도 괘씸히 여긴 모양이었다. 네 원대로는 해줄 수 없다는 심술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보쿠토는 제 손목을 완전히 잡아먹은 이 이름의 주인이 남자임을 확신했다. 어지간한 장부 바라는 게 아니라면야 여자한테는 이런 한자 잘 안 쓰지? 아무리 봐도 남자라고 이거... 다시 골치가 아파 이마를 짚었다. 성격이 급한 데다 엄청나게 활동적이기는 해도 보쿠토 코타로 역시 명문이라 불리는 후쿠로다니 학원 중등부 학생이다. 집안도 꽤 잘 살뿐더러 머리도 나쁘지 않아서 상식 정도는 잘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꼭 12년 전 어린 저를 안은 채 보통 여자아이 이름에는 이런 강하지 않은 한자들을 쓴단다, 자상히 일러주고는 했었다. 쿠로오 테츠로, 보쿠토는 다시 제 손목을 반쯤 둘러 새겨진 이름을 만져 보았다. 정말 이보다 강할 수는 없다, 심지어 색깔처럼 이름도 까맣다. 검을 흑 자와 꼬리 미 자를 보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떻게 이리 검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닌가, 그래도 내 미래보다는 덜 깜깜한가. 화끈거리는 감각은 좀 덜해졌어도 아직 아프기는 해 오른손으로 조용히 이름 부위를 감쌌다. 계속 이렇게 이름 없이 하얀 쪽이 나았지, 이제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제 운명이길 바란 여자애를 떠올렸다. 하얀 살결과 사근한 말씨, 길게 뻗은 목이며 피아노 위에서 우아하게 흐르는 손가락까지 정말 모든 부분이 예뻐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봤었다. 이상하게 다가갈 엄두가 안 났다, 늘 하고 다니는 그 하얀 레이스 초커 때문인지도 몰랐다. 보통 운명을 맞은 여자애들은 그 이름이 새겨진 곳에 맞춰 자그만 장신구를 했는데 보통은 팔찌나 초커, 굵은 리본 목걸이, 발찌, 귀걸이 등이었다. 그 흔한 귀걸이나 목걸이조차 하지 않는 아이가 초커만은 빼놓지 않으니 당연히 그리 여길 뿐이 없다. 저 애는 누구 이름을 가졌을까, 설마 내 이름일까? 그럼 좋겠다, 잘 해줄 수 있는데. 불과 어제까지는 그런 행복한 상상도 해봤다지만 오늘부로 다 폐기처분이다. 보통 운명은 맞교환 형식이었다. 즉 제 손목을 차지한 채 앉아계신 이 쿠로오 테츠로 씨에게 제 이름이 있을 확률이 거의 90% 이상이라는 뜻이다. 아오, 진짜. 게다가 이름조차 모르는 상대다, 후쿠로다니 학원 학생이 아닐지도 몰랐다. 어쩜 방금 막 태어났을 지도 모르지! 씨발! 갑자기 울분이 치밀었다. 아니, 좀 아는 남자로라도 해주든가! 아카아시나 코노하나 와시오나 사루쿠이나 많잖아! 그런데 왜 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쿠로오 테츠로 씨냐고! 쿠로오 테츠로 씨 지금 산부인과 아기 침대에 누워 계신 거 아냐?! 진짜 미치겠네! 벌떡 일어나 고장 난 강아지 로봇처럼 방 안만 뱅뱅 맴돌다 다시 퍽썩 소리 나게 주저앉았다. 매트리스가 콱 눌렸다 올라왔다. 실제로 제 옆 반 어떤 아이 손가락에 갑자기 담임선생 이름이 나타나 한바탕 학교가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처음 있는 경우라 학부모회와 그 담임선생을 제외한 선생들 모두가 소집돼 이 둘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로 꼬박 하루 간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다행히 담임선생과 그 애 나이 터울이 10년을 넘지 않아 적당히 약혼시킨 다음 그 반 담임을 바꾸는 정도로 끝냈다지만 그로 미뤄보건대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씨발, 제발 누군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제발, 최소한 저랑 동갑이거나 플러스마이너스 세 살은 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것만은 꼭 들어주십시오, 운명 님. 평소 절대 하지 않던 욕까지 할 만큼 절박했다. 올해 고작 14살, 중학교 3학년인 보쿠토에게는 사실 세 살 차도 꽤 컸다. 세 살을 기점 해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이 나뉘는 나잇대를 사는 중이니만큼 당연히 그럴 뿐이 없었다. 보쿠토는 제 손목 움직임을 따라 움찔거리는 이름을 보다 아 진짜 몰라, 이불을 덮어썼다. 눈시울이 뜨끈뜨끈해져 아예 엎드려 누웠다. 불 끄는 일 따위 지금 알 바가 아니었다, 손목을 얼굴도 모르는 무뢰한이 차지해버렸는데 어떻게 정신을 다잡겠는가. 아침이 와 어머니가 깨우러 올 적까지 보쿠토는 그 눈물 젖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그저 엎드려 울고만 있었다. 왜 그러니, 코타로? 무슨 일이야? 코타로 우니? 불은 이렇게 켜놓고! 그 따스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잔뜩 잠긴 목 위로 울음이 솟는다. 엄마, 나 이름이 생겼는데... 어머니는 대번 표정을 바꾸었다. 그래, 누군데? 아는 사람이야? 자꾸 눈물이 솟아서 어머니를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뿌옇게 흐려진 상이 모르는 사람이야? 빛처럼 퍼진 분홍빛 입을 벙긋인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마다 입은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한다. 검은색이 자꾸 시야를 점령했다. 대답하는 대신 손목을 내밀어 그 이름을 보여주자 어머니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구나, 이런 이름 가진 친구는 없니? 보쿠토는 가만 고개를 저었다. 발이 넓은 데다 배구부원을 모집해보겠답시고 학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지라 1학년부터 3학년을 통틀어 모르는 애가 거의 없다시피 한 보쿠토도 이 이름은 정말 처음 봤다. 그럼 최소 다른 학교 애라는 얘기다, 다시 울음이 터져 훌쩍거리는 어깨를 끌어안은 따스한 손이 굵게 새겨진 검은 이름을 부드러이 쓸어내렸다. 그래도 네 운명이잖니, 코타로? 잘 될 거야, 언젠가는 만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렴. 보쿠토는 저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 울음이 차올라 앞이 제대로 분간되지도 않을 만치 시야가 뿌얬지만 전혀 아랑곳않고 악썼다.
“나이차 엄청 많이 날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떡해! 크는 거 기다리는 것도 혼자 남는 것도 싫어! 난 같이 늙어가고 싶단 말야, 엄마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니, 나는 지금 이 시간을 함께 하려는 거야! 기다리기는 싫어! 왜 기다려야 해? 이게 뭔데? 운명이 뭔데! 심지어 남자 같다고, 난 작고 귀여운 사람이 좋은데 그것도 아니고! 진짜 다 망했어, 망했다고 엄마! 싫어, 이거 이름 싫어! 지울래!”
망연한 표정으로 듣기만 하던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고운 눈매 아래 진 주름이 보여 저도 몰래 입을 다물자 그건 안 되는 거 알잖니,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어 코타로? 조용히 묻는다. 짧은 손톱이 손바닥 깊이 파고 들도록 주먹을 꽉 쥐고는 알아, 들었어. 배웠어, 짓씹듯 대답했다. 이름은 지워도 세 번까지 다시 생겨나는 데다 겨우 지워낸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과는 제대로 된 연을 맺지 못한다는 사실은 매우 유명했다. 설사 저를 다 무시하고 결혼해도 안 좋게 깨지기 일쑤였다. 불화나 병마는 예사요 심할 경우 사별까지 갔다. 물론 운명이 그렇게 심통만 부리지는 않았다. 점지 받은 짝과 사는 사람들에게는 재복 혹은 건강, 애정 등을 주었으니 짝이 아주 별로가 아닌 이상 보통은 다들 그냥 운명을 찾아 살았다. 어쩔 수 없잖니, 코타로.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그래도 엄마는 아직까지 서로 나이차가 열 살 이상인 커플은 못 봤단다. 엄마랑 아빠도 네 살 차이잖니? 너도 그럴 거야. 그래도 운명이 나잇대 정도는 보는 게 아닐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괜찮을 거야 코타로. 분명 좋은 아이일 거야. 부드러이 머리 쓰다듬어주는 손이 너무도 따스해 와앙, 아예 소리 내 울어버렸다. 눈물 젖어 축축해진 귓가를 어루만지는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상냥했다. 혹시 모르니까 케이지 군한테도 물어보고. 알았지? 케이지 군이 알 지도 모르잖니, 그러니까 한 번 물어봐. 그냥 고개 한 번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았다. 나 씻을게, 학교 가야지. 손목은 아직도 얼얼하다. 혹시라도 가다 아버지를 마주칠까 금방이라도 다시 타오를 듯 화끈거리는 손목을 움켜쥔 채 그대로 화장실까지 가 문을 잠갔다. 거짓이 아닐까, 천천히 왼쪽 손목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았으나 글자는 여전히 또렷하다. 오히려 더 검어진 것 같다, 결국 포기하고는 칫솔을 꺼내 물었다. 민트 맛 나는 치약이 온 입안을 들쑤신다. 막혔던 코가 뻥 뚫렸다. 허리를 짚은 손목 옆으로 글자 끝부분이 보였다. 쿠로오 테츠로, 정말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이다. 저만치 마당발은 아니어도 자기 학년 애들 정도는 다 아는 아카아시한테 물어봐도 분명 모른다는 답만이 돌아올 터라 푸우, 또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 테츠로라, 손목을 무심코 등 뒤로 감추었다.
네임 세대, 보쿠토 바로 이전 세대부터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운명이라는 것은 사람들 신체 부위 여기저기에 제 존재를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들 기이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이게 뭐지? 혹자는 제 손등 위 새겨진 단어가 설마 다른 나라 언어이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채 그저 그림이라 여겼다. 이게 뭐지,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심상치 않다 느낄 즈음이 돼서야 세계 각국 정부는 놀라운 발표를 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여러분께 새겨진 문자는 미래 배우자 이름입니다.
운명, 가장 과학을 따지는 사람들 입에서 나온 운명이라는 단어가 쉬이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곧 세계는 몇 번을 뒤집혔다. 운명이 말이 되느냐, 그런 말도 안 되는 말하지 마라! 미신을 맹신하는 정부 따위 필요 없다는 폭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쏙 들어갔다. 이름을 무시한 채 그냥 결혼했다가 파탄을 맞는 사례가 늘어난 반면 무리해서라도 인연을 찾아 결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이 괴상한 일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 된 후 어떻게 미래가 정해져있을 수 있느냐, 말도 안 된다며 한참을 방황하던 사람들은 결국 이 불가사의한 힘을 거부하는 대신 순응하는 쪽을 택했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하게도 여러 가지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났다. 동성혼 허용이 대표적이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점지 받은 그 수많은 사람들을 다 동거 커플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만큼 정부로서도 피치 못할 선택이었다. 서양 쪽이야 원래 동성혼의 법제화를 추구하는 쪽이었다지만 동양은 상황이 사뭇 달랐다. 어차피 거역하지 못할 거 그냥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며 순응한 젊은 세대와 달리 노인층 대부분은 운명이라는 게 뭐냐, 다 미신 아니냐? 어떻게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결혼할 수 있냐면서 들고 일어섰는데 그마저도 곧 수그러들었다. 반항하는 사람들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한테만 새로운 인연이라는 낙인을 내리찍어 생활을 다 파탄 내놓은 운명을 거역할 자는 더 이상 없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자기 짝을 찾아갔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었다, 이름이 가장 중요했다. 너는 내 이름을 가졌느냐, 가지지 못했느냐. 서로 아무리 끌린다 해도 이름을 갖지 못한 이상 돌아서야만 했다. 때로는 아프리카 사는 사람이 프랑스나 캐나다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같은 나라기만 해도 감사해야할 지경이었다. 다른 나라 문자가 새겨질 경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국가 언어 공부하기뿐이었다.
그 사람들 다음 세대가 바로 보쿠토 세대다. 소위 네임 2세대라 불리는 이 세대는 보통 이르면 아기 때, 아무리 늦어도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몸 어느 부분에든 인연이 새겨지기에 유치원 시절부터 동성혼과 이성혼이 같다고 배우며 아이 배양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다. 동성혼이 많아져 직접 임신 가능한 커플이 적어진 이상 아기는 배양할 밖에 없었다. 이성 커플이 직접 낳은 보쿠토와 달리 학교에는 동성 부모를 지닌 배양기 출신 아이들도 꽤 많았다. 이제는 배양기 이용 출산과 직접 출산 비율도 반반인지라 차별은 전혀 없다 봐도 좋았다. 딱히 지능이 다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차별은 다른 쪽에서 생겼다. 바로 노네임이다.
노네임, 십만 명 당 한 명 꼴로 나오는 소위 운명을 점지 받지 못한 아이들이다. 성인 첫 해가 지나기 전까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을 시 국가는 그들을 노네임으로 분류했는데 불편이 아주 막심했다.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조차 하기 힘들었다. 운명은 제 손 거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아주 가혹해 노네임과 연애하는 사람은 무조건 불행하게 만들었다. 결국 노네임끼리 연애하거나 네임을 가진 사람이 죽어 혼자가 된 사람을 만나 연애해야만 했다.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사람은 그들을 부러워한다지만 정작 노네임들은 제 불행과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연민 어린 시선을 못 이겨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연말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으니 노네임만 아니게 해달라는 말이 적힌 소원종이들이 주렁주렁 달리는 게 아니었다. 이상적인 구석이 없잖아 있는 보쿠토로서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살고 싶은가? 그런 생각만 했었다. 결국 그리 말했던 어느 어린 날, 어머니는 답잖게 매우 화냈었다. 코타로, 그런 말하는 거 아냐. 운명이 화낸다고, 그런 말해서는 안 돼! 조금 억울했으나 그런 어머니 얼굴은 처음이었던지라 그저 고개만 연신 끄덕였었다. 안 할게, 절대 안 그럴게 엄마. 안 그럴게, 그렇게 입 꾹 닫은 채 몇 년을 지냈다. 연말 소원종이에는 늘 배구 더 잘하게 해주세요, 올해야말로 전국우승! 나의 시대! 라는 말만 썼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 만난 아카아시보다는 성실했다, 조그만 게 어찌나 냉정한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신은 이 운명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족하다며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 새해 소원을 적지 않았다.
그런 아카아시도 작년 여름 운명을 맞았다. 후쿠로다니 1학년 생, 예쁘장하게 생긴 동갑내기 여자애였다. 와, 예뻐! 부럽다! 와, 진짜 귀엽네! 부럽다~! 외친 보쿠토에게 그는 글쎄요, 고개만 갸웃해 보였었다. 어차피 서로 원한 만남은 아니니까요. 단순히 운명이라서 만난 거지. 저쪽도 썩 달갑지는 않을 걸요?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저야 뭐 누구든 상관없으니까요,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네요. 적어도 비행기 탈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러면서도 제 짝은 살뜰히 잘 챙겼다.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인간이 가진 보호본능이 발동해야 했다 옳았다. 쉬는 시간마다 제 짝을 찾아가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을 보다 못한 학교가 반을 바꿔줄 만큼 성실히 챙겼다. 아카아시는 몰라도 여자애는 확실히 운명이 정해준 짝을 좋아하게 된 듯 보였다. 그를 보며 나는 어떨까? 생각했었다. 만약 짝이 생기면 나는 어떨까? 잘해줄 수 있을까? 아님... 물론 그 생각은 오래지 않아 배구공을 맞아 날아가 버렸다.
설마 그 생각을 지금 다시 하게 될 줄이야! 보쿠토는 검게 물든 제 손목을 아카아시한테 내보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지 아카아시? 나 이름 떴어. 그런데 모르는 이름이야! 어떡해! 아카아시, 너 이 사람 알아? 울먹거리는 머리통 위로 떨어진 말은 모릅니다, 언제나처럼 냉정하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어딜 봐도 일본인 이름이니까 말은 통하겠어요.”
아, 재외 일본인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일본 살 확률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힘내세요. 저는 짝을 찾았다고 아주 여유만만이다. 퍽, 책상을 내리친 보쿠토가 너 진짜 이 사람 몰라? 우리 학교 사람 아니지 역시? 거의 울 듯이 말했다.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다 아카아시랑 네가 모르는 애가 어떻게 우리 학교 애냐? 어이없다는 듯 젓가락을 흔드는 코노하를 째려보고는 다시 아카아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글쎄요, 확실히 중등부 학생은 아닌 듯 합니다만 고등부 학생 분이실 수는 있겠죠. 한 번 고등부 선생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젓가락을 든 손은 여전히 단정하다.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그 손을 붙잡고 고마워, 고마워 아카아시! 역시 아카아시 최고! 외친 보쿠토를 시끄럽습니다, 보쿠토 씨. 식사하세요. 다들 쳐다보잖습니까, 다시 앉힌 아카아시가 턱을 괴었다. 그래도 일본인이니까 어디선가는 만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고용해 찾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역시 보쿠토 씨는 우연찮게 만나는 쪽이 더 좋으시죠? 그게 더 운명 같으니까. 제 말 맞습니까? 괜히 찔려 아, 아니야. 그렇지는 않고, 말을 더듬자 맞군요, 또 젓가락을 쥔다. 하얀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곧 만날 겁니다, 운명은 그렇게 매정하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자신이 손 댄 사람들은 확실히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혼인신고 건수가 느는 거겠죠. 너무 조바심내지 마세요, 열심히 찾아보죠. 코노하와 와시오가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우리도 도와줄 테니까! 그리 외치는 셔츠 깃 아래로 초록색 이름이 보인다. 보쿠토는 고개를 젖혔다. 어쨌든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으으 머리 아파. 초조해져 저도 모르게 다리를 달랑달랑 흔드니 밥 먹으면서 다리 흔들지 마세요, 냉정한 목소리가 날아온다. 복 나간다 할 거야, 아카아시?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검은 시선이 더 가늘어진다. 아니요, 그냥 제가 신경 쓰여서 그런 겁니다만. 괜히 멋쩍어져 손목을 만지자 벌써부터 미래 배우자에게 의존하지 마세요, 차분한 잽을 날린다. 내, 내가 뭘 의존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코노하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날아왔다. 야, 친구 배우자는 뭐라고 부르냐? 보쿠토는 얼굴 시뻘개진 채 식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뿐이 모르는 운명이라는 사람이 원망스러워도 별 도리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기만 해 봐, 가만 안 둘 거야. 밥만 열심히 퍼먹는 보쿠토가 귀여운 지 그 머리통을 만지던 코노하가 만약 고등부 사람이라 해도 그닥 날리거나 노는 사람은 아니겠네, 툭 뱉었다. 아님 우리가 모를 리가 없잖아, 배구부도 아닐 거고. 아카아시는 짧게 동의했다. 그렇겠죠, 저희 고등부와는 몇 번 시합 해봤으니까요. 최대한 열심히 알아보겠습니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제야 고개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진짜 만날 수는 있겠지? 돌아온 말은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겠죠, 설마 이름만 주고 만날 기회는 안 주겠습니까. 그 담담한 목소리가 제 맘을 감싸주는 것 같아 역시 너 뿐이야 아카아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안지 마세요, 임자 있는 몸이에요. 선배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어퍼컷이다. 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뭐가 중요하다고! 물론 넌 얼굴도 이름도 알지만... 코노하가 뒤집어지게 낄낄댄다. 와시오도 따라 웃는다. 몰라, 역시 모르겠어. 혼란스럽다고... 내지 못할 말을 밥과 함께 뱃속 깊이 가라앉히고는 곧장 반으로 돌아가 엎드렸다. 왁자지껄한 소리도 오늘은 하나도 신나지 않는다, 보쿠토는 가만 눈을 감았다. 세상이 까매졌다.
고등부에도 쿠로오 테츠로라는 사람은 없대요. 아무래도 우리 학교 사람은 아닌가봐요, 보쿠토 씨. 온몸이 축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래? 알았어 아카아시, 고마워. 오늘은 혼자 있을래, 손만 살래살래 젓는 보쿠토를 보다 그 앞에 앉은 아카아시가 다른 애들한테 물어볼까요? 조용히 물었다. 혹시 이 주변 학교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우리 학교 애들이 주변 학교 애들과 얼마나 교류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학원에라도 같이 다니는 애가 있을 수도 있고요. 한 번 물어볼까요? 딱히 그럴 의지는 들지 않았다. 제가 묻거나 아카아시가 물어야 할 텐데 혹시 보쿠토 상대가 그 쿠로오 테츠로라는 녀석 아니냐는 소문만 유발할 터라 역시 손만 젓고 말았다. 됐어, 네 말대로 언젠가는 만나겠지 뭐. 일본사는 일본인이기만을 바라자고... 어쨌든 고마워 아카아시, 고개 푹 수그린 채 웅얼웅얼 대답만 하는 보쿠토를 잡아 일으킨 손에는 평소보다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어린애 치고 커다란 손바닥이 등을 토닥인다. 너무 축 처져 있지 마세요. 언제 어디서 그 사람을 만날지 모르잖습니까, 늘 긴장하고 계세요. 멋진 모습을 보여야할 거 아닙니까? 맞는 말이어도 없는 힘을 나게 할 수는 없다. 간신히 두 손 들어 맞아! 내일부터 힘낸다, 보쿠토 코타로 파이팅!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외치자 하아, 큰 한숨이 떨어졌다. 찾을 때까지 계속 이러실 거예요? 그럼 전 일본을 쥐 잡듯 뒤져보고요, 연습시간에도 이러실 겁니까? 그래서는 안 되죠, 몇 년 간 계속 전국우승 적어오셨잖아요. 우시와카도 키류도 사쿠사도 다 이기시겠다면서요, 그런 분이 이러셔도 됩니까? top 3 자리 굳히셔야죠, 언젠가 만나게 될 그 운명 생각하다 당장 잡을 수 있는 것마저 다 놓치실 겁니까? 이왕 지금 막 만날 수는 없는 거 자기 자신이라도 더 갈고 닦아 더 멋지게 만나자는 생각은 못하십니까? 근시안적인 생각은 버리세요, 곧 지역 예선이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해야죠. 날카롭게 딱딱 내리친 말이 정신을 확 끌어올린다. 후배한테 잔소리를 들어 짜증난다는 맘보다는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들어 벌떡 일어났다. 맞아, 아카아시. 네 말이 맞아, 연습이나 하러 가자. 언젠가는 만나겠지, 뭐. 찾기는 할 테지만 풀 죽지는 않을 거야! 언젠가 가장 멋진 모습으로 만난다! 아직 어린 티 잔뜩 남은 얼굴 가득 번진 자그만 미소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저도 도와드릴 테니까요, 선배. 아카아시가 빈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아 그래, 그래! 고마워 아카아시! 그 작은 등만 팡팡 내리쳤다. 그만하세요, 선배. 뭐하시는 겁니까? 핀잔하면서도 평소처럼 몸을 빼지는 않는다. 아마 제 기분이 엄청나게 다운됐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손을 멈춘 채 멍청히 생각했다. 내 운명은 어떤 사람일까? 나 같은 사람일까? 그건 싫은데... 모르는 사람이라서인지 이래저래 생각 갈래만 많아진다. 터덜터덜 시무룩하게 연습하러 가면서도 얼굴도 모르는 그 까만 인연을 계속 생각했다. 너는, 어떤 사람일까. 나 같은 사람일까? 나보다 나이가 많을까? 아님 어릴까, 아직 초등학생일지도? 이미 대학생일지도 모르지, 어쩜 나와 동갑일지도 모르고. 키는 어떨까? 나만큼 큰 사람은 별로야, 조금 작은 편이 좋아. 살은 부드러운 쪽이 좋고... 하지만 남자애잖아? 그렇진 않겠네, 아쉽다. 그럼 눈은 어떨까? 난 크고 반짝반짝한 눈이 좋아, 아카아시 짝처럼! 머리카락은 음, 다갈색이 좋겠다. 햇빛 아래서는 막 해변 모래처럼 빛나고! 하지만 남자애니까 머리 정리는 안 할 수도 있어, 어쩜 나처럼 왁스 바를 지도... 그건 싫은데... 흰 피부를 좋아하지만 역시 남자애니까... 운동 많이 하는 애들은 다들 까맣더라고... 남자애들이 흰 피부 갖기 위해서는 안 나가거나 타고나는 방법밖에는 없어... 설마 혹시 나는 도서부원 타입을 원하는 건가? 하지만 이왕 남자랑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거면 역시 같이 운동해주는 사람이 더 좋은데. 아, 그럼 역시 피부 까무잡잡하겠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어떻게 상상해도 이상형과는 자꾸 조금씩 어긋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연습에만 집중했다. 보쿠토, 나이스! 희뿌옇게 귓가 울리는 목소리를 향해 브이 자 한 번 그려보이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곧 이 멤버와도 작별이다, 저번 회의 날 3학년 중 두세 명은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배구를 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역시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서, 운동은 충분히 많이 했고. 너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계속 배구할 거지? 후쿠로다니는 명문중학교인 만큼 학업을 중시하는 사람이 많다.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라 그냥 응, 대학 가서도 배구부 정도는 들 지도 모르고? 당연히 취직은 다른 데 하겠지만, 어깨만 으쓱했었다. 보쿠토 넌 잘하니까. 너만큼만 잘했어도 배구 좀 더 생각해봤을지도? 적어도 나도 3년은 더 했을지 모르지, 진심 어린 칭찬을 들어 히죽 웃기도 했었다.
어쨌든 다 지난 일이지.
상대 코트 깊숙이 스파이크를 한 대 쾅 때려 넣은 보쿠토가 후욱,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불룩이 오른 가슴 아래 고였다 주르르 흐른 답답함이 으아아아! 함성으로 터져 나온다. 보쿠토 팀 승리! 재빨리 달려온 아이들이 보쿠토의 등을 퍽퍽 친다. 잘했어, 인마! 역시 에이스가 있는 팀이 당연히 이기지?! 우리 주장님 최고! 맹금류 최고! 제 기 살려주려 하는 소리임은 알아도 듣기 싫지 않아 맞아! 보쿠토 코타로 님이 최고시다! 나 최고! 그저 와그르르 맞춰 웃었다. 저를 위해주는 마음을 거절할 사람은 존재치 않는다, 원체 사랑받으며 자란 터라 인간이 가진 악의라는 감정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본디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성격인 보쿠토는 꼬박 14년을 그런 마인드로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도 활기찬 데다 사랑스러운 보쿠토를 해하려 하지 않아 한 번 상처입지도 않았다. 그러니만큼 이 왼 손목에 새겨진 이름은 거슬릴 뿐이 없었다. 저를 사랑해주기는커녕 일본에서 사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운명이라니 이보다 가혹하기는 힘들었다. 아대 아래 감춘 이름이 뜨끈뜨끈했다. 이거 가려서 이런 건가, 아님 그냥 기분 탓인가? 동네방네 물어볼 수도 없어 말없이 아대만 만지작거리는 보쿠토 쪽으로 드리운 그림자는 여느 때처럼 말수가 적었다. 왜 그러십니까, 보쿠토 씨? 어디 아프신가요? 흥건히 젖었는데도 여전히 건조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 아니 아무것도. 슬쩍 눈썹 올린 코노하가 손목?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아니, 그냥 좀 뻐근해서. 너무 세게 쳤나~ 더 이상 걱정 끼치기 민망해 씩 웃자 아카아시는 또 마뜩찮다는 표정을 짓는다. 원래 얼굴과 눈매 자체가 날카롭기도 하나 팀원들 컨디션을 체크할 적에는 더 날을 세운다. 중학교 2학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카리스마다. 역시 나 고등학교 가면 아카아시가 주장 되려나, 괜찮다는 표시를 해보이고는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땀이 셔츠자락을 자꾸 끌어당겨 피부 여기저기 붙인다. 기분이 훅 나빠져 으, 땀 진짜 쩐다. 여름에는 어떻게 운동했지? 인상 찌푸린 보쿠토에게로 얼음 담겨 잘각거리는 물병 하나가 날아왔다. 그거 마셔, 보쿠토! 와시오다. 멤버 대부분과 빠르게는 초등학교, 늦게는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동고동락해왔으므로 그 어느 팀보다 팀워크는 좋았다. 땡큐! 외친 보쿠토를 향해 짧게 손 흔들어 보인 커다란 등은 곧 다시 코트 정비를 시작했다. 오늘은 나 배려해주는 건가 다들~ 코트 정비를 같이 하고픈 맘은 굴뚝같아도 어쩐지 오늘은 힘이 나지 않아 그냥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나 오늘은 먼저 갈게, 몸이 좀 안 좋아서. 어디 아파? 물으려는 듯 보쿠토 너 오늘, 목을 쭉 뺀 사루쿠이의 입을 턱 막은 코노하가 어 그래! 가라 보쿠토! 잘 가! 사루쿠이 몫까지 열심히 팔을 흔든다. 푹 쉬다 오세요, 잡생각은 마시고요. 그냥 쉬기만 하시는 겁니다, 아셨죠? 무슨 엄마나 이모처럼 진지하게 얘기하는 아카아시에게 엉! 나 그럼 간다! 인사하려 왼손을 들었다간 얼른 다른 쪽 손으로 바꿔 들었다. 역시 아직 이쪽은 신경 쓰인다, 움직이지 않아도 불붙은 양 화끈거리는 팔을 쓰기는 조금 그래 열심히 오른손만 흔들어 인사하니 이제 그만하라는 듯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가요, 보쿠토 씨. 그 목소리가 제법 컸다. 내일 봐, 인사하고는 그대로 문을 나가 계속 걸었다. 날씨가 추워 몸을 움츠렸다. 으, 추워. 여민 코트 깃 안까지 바람이 스며드는 것만 같아 몸 움츠린 채 열심히 걷는 머리 위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으, 얼 것 같아 진짜! 발걸음을 바삐 옮겨 정류장까지 가 전광판을 확인했다. 버스 도착까지 8분, 정말 얼어 죽기엔 딱 충분한 시간이다. 아, 정말. 손을 부비는데 문득 손목 둘러 새겨진 그 이름이 보였다. 쿠로오 테츠로, 얼굴 모르는 인간이 자꾸 머릿속을 휘젓는다. 정말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은 지금 어디서 뭘 하는 중일까? 나처럼 추워하고 있을까? 아님 알바? 과제? 친구랑 노느라 밖일지도... 역시 이 시간 즈음이면 평범하게 집이려나, 저녁은 먹었을까? 난 아직인데. 잘 모르겠네. 어떨까, 발 동동 구르다 다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한 치 줄어듦 없이 여전히 8분이다.
쿠로오 테츠로한테는 내 이름이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라는 형태로 맞교환한 인연이 아로새겨지는 시기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기 시절 나타나지만 그와 이어진 사람은 고등학생이 돼서야 제 운명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운명이 나타나도 모른 채 지나가는 일도 꽤 많았다. 나중에서야 그 애가 내 운명이었구나, 깨닫고는 뒤늦게 찾아나서는 사람들도 수 없었다. 그래도 이들은 점지 받은 인연이 노네임인 사람들보다는 경우가 좀 나았다. 대부분의 노네임들이 2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남은 쪽은 그냥 평생을 혼자 살아야했다. 반동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제 인연을 만나면 그냥 거의 제깍 결혼해 살았다. 나름대로 또 잘 살았다, 사랑은 점차 죽은 말이 되어갔다. 아무도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운명을 거부해 죽어가는 사람들만이 사랑이란 단어를 토했다. 사람 미치게 하는 미지근한 온기만이 감도는 세상이었다. 보쿠토는 아버지가 어렸을 적 즐겨 봤다는 영화를 떠올렸다. 잠적해버린 여자 주인공을 반쯤 실성한 채 찾아다니는 잘생긴 남자 주인공을 보다 아빠,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 왜 저렇게 사람을 찾아다녀? 어차피 운명이잖아, 아니야? 그런데 저 사람들은 네임이 어디 있어? 물은 저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심란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즉 잊지 못했다. 노란 눈동자가 잠시 잘게 흔들렸었다. 꼭 짤랑짤랑, 방울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저 사람들은 음, 네임이 없어. 그런 시대 사람들이야, 어린 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되물었었다. 왜? 그 사람들은 왜 네임이 없는데? 아버지는 그날 명석한 사람답지 않게 계속 말을 더듬었다. 그냥, 그런 시대가 있었단다. 운명 같은 거 없이 그냥 자기가 사랑한 사람과 가정을 이룬 시기가 있었어. 사실 몇 천 년 간 그랬단다, 난 오히려 지금이 적응이 안 돼... 그 시절 사람들은 아무 데도 이름이 없었단다. 그냥 아무 사람이나 만나 살았어, 그랬었지. 횡설수설하는 아버지 쪽으로 다가가 아빠, 왜 그래? 왜 아무나 만나고 살아? 어떻게? 노네임들은 아무도 못 만난다며, 아니야? 설명해주세요, 물은 보쿠토는 그 노란 눈 아래로 흘러내린 두려움을 밟고서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 그는 과학이 제일인 줄 알고 살다 갑자기 초자연적인 존재를 맞닥뜨려버린 인간이 내보인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었으리라, 그 짙은 두려움과 잘게 떨린 목소리는 아마 죽어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디론가 몸 숨겨버린 여자 주인공을 찾는 남자 주인공을 가리키며 아버지는 그리 말했다.
저게 사랑이란다.
저게 사랑이야, 코타로. 언젠가 네가 저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리 말하고 돌아서 걸어가는 아버지를 잡지 못했다. 그 어린 마음에도 따라가거나 더 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도 설명하지 못할 어려운 감정이로구나,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아냐,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사랑이란 너무도 뜬구름 같았다. 운명을 거부한 바보 같은 자들만이 하는 짓이라는 생각도 자꾸 들었다. 그렇게 제 짝을 살뜰히 잘 챙겨 벌써부터 훌륭한 남편감 아카아시조차도 제 감정이 절대 사랑은 아니라 단언하지 않는가, 그조차도 사랑이 아니라니 제 짝 얼굴조차 모르는 보쿠토로서는 영 감 잡기가 힘들었다. 사실 뭐든 겪어봐야 아는 타입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하는 사이 바로 앞까지 달려와 멈춰 선 버스를 탔다. 목도리 깊이 얼굴을 파묻은 채 자는 사람들을 지나쳐 맨 뒤 빈 자리 창가 즈음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길가를 지나다니는 커플들 중 그 사랑이라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알 수 없었다. 하나도 없을 지도 모르고 어쩜 모두일 수도 있다, 보쿠토는 제 손목을 어루만졌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쿠로오 테츠로라는 이름자를 만진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쿠로오 테츠로, 쿠로오 테츠로... 운명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자꾸 머리가 들떴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떨까, 살짝 장갑을 걷어 이름을 훔쳐보았다. 그 부분만 제 몸 아닌 다른 사람 몸 같았다. 쿠로오 테츠로, 획 복잡한 이름이 머릿속을 홱 꼬아놓는다. 아, 정말. 보쿠토는 젖어서 반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아예 이마까지 내려놓았다. 많이 긴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린다. 쿠로오 테츠로, 괜히 그 되뇌어도 보았다. 아카아시나 코노하도 이랬을까, 다른 사람 연애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건만 급기야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많이 만져서인지 이름 부분이 발갛게 달았다.
쿠로오 테츠로, 너는 어떨까.
내 이름을 만지는 중일까, 아님 네 운명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름이 막 나타났던 새벽까지만 해도 차라리 노네임인 편이 낫겠다 울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임이 나타나기 전 세대가 쓴 의미로. 갑자기 가슴이 바듯 달아올라 그 손목에 입을 맞췄다. 뜨거웠다.
눈 깜짝할 새 배구 대회 지역 예선 날이 왔다. 도쿄는 3위까지 나갈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해라, 우리는 실력이 돼! 감독이 한 말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열심히 스파이크를 날렸다. 잘하셨어요, 보쿠토 씨! 평소에는 그리도 깔끔하면서 경기할 적에는 수건은커녕 제 유니폼으로만 땀을 닦는 아카아시는 오늘도 역시 익숙하게 상의를 들어 올려 이마를 훔치고는 허리를 짚었다. 저 쪽 당황했어요, 그대로 가죠. 적당히 가운데 꽂아 넣는 편이 좋겠어요, 예상대로 블로킹이 약한 팀입니다. 선배는 하실 수 있으세요, 빈말은 절대 하지 않는 아카아시답게 전략적으로만 말한다. 벌써 1세트를 따놔서 부러 대담하게 나가자 하는지도 몰랐으나 아카아시만큼 머리를 잘 쓰는 선수도 드물기에 그대로 가자 했다. 좋아, 그렇게 할게.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자세를 취했다. 긴장해 숨을 내쉬는 와시오가 보였다. 한 번 더 가자! 코노하가 웃는다. 그래! 아카아시가 부드럽게 올린 공을 있는 힘껏 쳐내자 퍽, 공 맞는 소리와 함께 윽, 억눌린 비명도 났다. 저 자식 진짜 괴물이야, 벌개진 팔을 흔들며 째려보는 상대 팀 미들블로커에게 인상 한 번 써주고는 뒤로 돌았다. 보쿠토 씨, 쓸데없는 도발은 하지 마세요. 괜히 상대를 열 받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리지는 않는다. 우리 팀 세터 제일 무섭지, 멀리서 사루쿠이가 하하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우리 팀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나지. 보쿠토는 다시 몸을 돌려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질린 표정을 한 상대들이 보인다, 제대로 한 방 더 먹여줘야 할 시점이라 생각했다. 따라올 생각은, 절대, 못하게, 해줄게. 높이 뛰어 올라 최고 타점을 쳐내렸다. 쾅, 질리다 못해 겁먹은 얼굴들을 보자 행복해졌다. 이 시간, 보쿠토 코타로는 누구도 저지 못할 압제자였다.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한다.
시합은 2-0, 후쿠로다니의 완승으로 끝났다. 보쿠토 씨,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아이싱이라도 좀 하세요, 팔하고 무릎에요. 얼음을 가져와 그리 말하는 아카아시를 보다 물어볼 게 있는데 아카아시, 입을 열었다. 네? 뭐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나요? 아카아시는 시합을 어렵지 않게 끝냈을 적에는 흥분하지 않는다. 그저 숨만 고요히 몰아쉴 뿐이다. 아니, 사쿠사 말이야. 사쿠사는 어때? 어디랑 붙었어? 그쪽도 시드배정 받았잖아, 어디랑 했대? 뭐 하긴 그쪽이랑 붙은 팀은 무조건 2회전 탈락 확정이지만. 마른 입술 사이서 으음, 긴 신음이 튀어나왔다. 글쎄요, 처음 듣는 팀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저희 다음 시합 상대부터 생각하는 쪽이 좋겠습니다만, 보쿠토 씨. 3회전부터는 꽤 어려워지지 않습니까? 어차피 사쿠사가 이길 게 확실하고 실제로도 이기고 있으니까요. 곧 또 저희 시합입니다, 보러 갈 시간은 없어요. 보쿠토는 약간 몸을 기울였다. 뭐, 그렇긴 하지만 역시 사쿠사가 누구랑 붙을 지는 궁금하단 말이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매몰차게 말하지는 않는 아카아시를 향해 씩 웃어보이고는 농담이야 농담! 얼른 다음 시합 준비하자~ 기지개를 켰다. 아이싱이라도 하시라니까 정말 말 안 들으시는군요, 보쿠토 씨. 이럴 줄 알았긴 했습니다만, 작은 손이 들었던 얼음을 내려놓았다. 다음 시합도 저희가 이깁니다. 담담히 말하는 아카아시의 어깨를 툭 쳤다.
“물론 우리가 이기지.”
여기저기 털퍽 주저앉아 쉬다 돌아온 부원들이 어깨를 돌리며 걸어와 둘 주위를 둘러쌌다. 이제 다시 가야지, 주장님 부주장님! 보쿠토는 활짝 웃어보였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 했다, 주장으로서 그래야만 했다.
결국 이번에도 사쿠사는 아슬하게 이기지 못했다. 3점 차, 결국 부원들은 서로를 껴안은 채 울어버렸다. 미안, 한 점만 더 넣었어도! 외치며 우는 보쿠토를 끌어안은 부원들이 저마다 아쉬운 점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내가 그때 아웃시켜서는 안 됐는데, 내가 더 잘 토스했어야 했는데, 내가 리시브를 못해서, 엉엉 우는 후쿠로다니 선수들을 지나쳐가는 다른 학교 선수들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엉엉 울다 겨우 고개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뿌옇게 번진 시야에 무언가 들어와 얼른 눈을 벅벅 닦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다 떠난 경기장 구석 즈음 서서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사람을 눈 가늘게 뜬 채 응시하다 잠깐만, 부원들 틈을 빠져나왔다. 이런 돌발행동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어디 가냐, 보쿠토? 하면서도 다들 잡지는 않는다. 어쩐지 말을 걸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달려가 그 손목을 잡았다. 어? 들린 얼굴은 생각보다 더 사나웠다. 눈매 때문인 듯싶었다, 선이 얇은 데다 갸름하니 잘 빠진 턱, 높은 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눈이었다. 그 목과 손목에는 이름이 없다. 발목에도 역시 없다, 아직 이름이 없나? 노네임은 아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용건 있어? 너 후쿠로다니의 보쿠토 코타로지, 나한테 무슨 볼일이실까? 상대가 나른하게 묻는다. 반쯤 감겨 웃는 눈이 기분 나빴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나 여자들은 섹시하다 칭할 만한 종류였으나 순진한 데다 순수한 편인 보쿠토에게는 영 찝찝하게만 느껴졌다. 제 상대가 아니라 그런지도 몰랐다, 그 말랐지만 강단 있는 손목을 잡고서 말했다. 여기서 뭐해? 너희 시합은 한참 전 끝났을 텐데. 어느 학교지? 남자애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더니 기분 나쁘다는 기색 역력한 얼굴로 비식 웃는다. 알아서 뭐하시게. 우리 시합이 일찍 끝나든 말든 내가 여기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신데요, 후쿠로다니 에이스 님? 물을 필요 없잖아? 홱, 제 팔 내치려는 손목을 더 꽉 잡은 채 다시 물었다. 뭐하냐고 묻잖아. 마침내 상대가 짜증난다는 듯 눈을 반쯤 찡그렸다. 중학생 치고는 지나치게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조사한다, 조사. 다른 학교 에이스들 분석한다고, 왜? 안 될 일이야? 네 데이터 뺏겨서 기분 나쁜가? 그런데 당연한 거 아닌가, 에이스들은 어디서나 정보를 뺏기게 되어 있어.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고, 왜 화를 내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텐데. 저보다 2cm 정도 큰 머리통을 쳐다보다 너 선수가 아니고 매니저야? 뚱하게 묻자 하하, 어이없다는 양 마른 웃음을 터뜨린다. 농이 지나치네! 우리 팀 소수인원이거든, 매니저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거야, 지금 여기 에이스들은 고등학교 가서도 대부분 에이스 할 테니까. 에이스는 못 되더라도 두 번째 주축 즘은 하겠지. 그나저나 내 몸이 매니저처럼 보여? 확실히 그렇지는 않다, 적당히 근육이 잘 붙은 데다 낭창한 게 어딜 봐도 선수 몸이지 매니저 몸은 아니라 고개를 저으니 알아주셔서 영광이라며 웃는다. 웃음이 습관인 듯싶다. 그 손목을 만지작거리다간 어디 선수야? 물었다.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알 필요 없지? 나 너랑 같은 학년이거든, 우리 마지막 시합은 끝났고. 곧 고등학교 진학하는데 뭘 그런 걸 물어봐, 촌스럽게. 제 손자국 벌겋게 남은 그 손목이 이상하게 신경 쓰여 자꾸 흘끔거리는 보쿠토를 보던 남자애가 내 손목은 왜 그렇게 쳐다봐? 뭐 묻었어? 의아함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니, 이름 없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자꾸 털어놓게 된다. 흘긋 시선 올린 보쿠토의 시야 가득 그 매서운 얼굴이 찼다. 하얗지도 까맣지도 않은 데다 송곳니가 길어 무서운 인상이다, 코트에 서있기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리라. 젠장, 정말 재능 있는 얼굴이네. 부럽다! 아닌가? 부러워할 일은 아닌가? 생각하는데 따분한 답이 날아왔다. 응, 없어. 아직 안 나왔는데. 어쩜 노네임일지도 모르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건 왜 물어봐? 네가 혹시 내 이름 가지기라도 했어? 너 내 이름 알아? 보쿠토는 고개를 젓고는 이름을 물어보려다 참았다. 이런 애가 운명일 리는 없었다. 그런데 노네임은 안 좋잖아, 물은 어깨를 잡은 남자애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 그냥 열심히 살다 죽고 싶다. 아시겠습니까~? 언제 죽든 상관없어요, 사실 노네임이어도 잘 살 수 있어. 사람이 사랑만으로 사나? 꼭 운명 있어야 사나? 그렇지는 않아, 그리 말하는 입술은 색이 옅다.
“어느 고등학교 갈 거야? 그것만이라도 말해줘.”
“네코마! 공립 네코마 고등학교.”
후쿠로다니 고등부 배구부는 다른 학교들과 같이 합숙을 한다고 들었다, 도쿄 합숙이라 불리는 그 대형 합숙에는 사립 고교는 물론이고 공립 고교들도 온다 그랬다. 분명 네코마라는 이름도 있었다, 보쿠토는 눈을 빛냈다. 너 그럼 내년부터는 나랑 합숙해? 기분 나쁘다는 첫 느낌은 싹 잊고 그리 묻자 남자애는 뭐, 거기 들어가서 봐야지? 왜, 에이스 님은 내가 보고 싶어? 또 여유롭게 웃는다. 아니,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무어라 더 말하려는데 멀리서 아카아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쿠토 씨! 거기서 뭐합니까! 다른 학교 학생분 귀찮게 하지 마시고 이리로 오세요! 보쿠토는 으으,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망신당한 기분이 들어 입술만 핥는 보쿠토의 어깨를 다시 한 번 툭툭 두드린 남자애가 가 봐, 상냥히 웃었다. 가 봐, 너희 부원이 기다리네. 너 주장 아냐? 팀원 기다리게 하는 주장 싫어~ 주장답지 못한 일이야. 너희도 마지막 경기 아니었어? 우리도 마지막이었거든, 보쿠토는 뒤돌아선 채 고개만 돌려 물었다. 너희 팀 주장은 누구였어? 언뜻 사나워뵈는 얼굴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나였어.”
그렇구나, 뭐라 답하기도 전 남자애는 서둘러 체육관을 빠져나가 버렸다. 너 왜 이렇게 늦었어! 사쿠사랑 보쿠토 시합만 보고 오겠다더니 아주 제대로 늦었네! 뭐하다 왔어? 아마 팀원들이 그를 질타하는 모양이라 그냥 잠깐 더 서서 듣다가 다른 부원들에게로 얼른 뛰어갔다. 미안! 쟤가 뭐 하는지 궁금해서 그냥 갔다 왔어! 너답다며 웃는 부원들 사이서 보쿠토는 네코마로 진학한다던 그 이름 모를 팀 주장을 생각했다. 네코마, 네코마란 말이지.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졌다. 숨이 차는 것도 같았다.
결국 봄이 다 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름 주인인 쿠로오 테츠로는 찾지 못했다. 없대요, 제가 아는 사람들은 다 쿠로오 테츠로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없다는 군요, 이 주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사람을 고용해 찾는 쪽이 빠르지 않을까요, 보쿠토 씨? 보쿠토는 잠시 생각하다 잘 모르겠어, 조금만 더 있다가. 그쪽은 아직 이름 안 떴을지도 모르고... 사람을 쓴다 해도 고등학교 지나서 찾는 편이 낫지 않을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아카아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맞는 말 같습니다. 하얀 손가락이 제가 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어차피 머지않아 개학하고서 또 보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졸업식이니까 꽃다발이라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고 제가 다시 찾아뵈기 전에 배구부를 강하게 만들어 놔주세요. 고등부 배구부에서도 에이스가 되어주세요, 보쿠토 씨. 꾸벅 고개 숙인 아카아시에게 물론이지, 거기서도 에이스가 될 거야!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중학교 3학년 들어 부쩍 커 177을 뚫었으니만큼 고등부 현 에이스와 대결해도 아주 밀리지는 않겠다 싶었다. 한 해 저 없이 잘하세요. 괜히 뭉클해져 코를 훌쩍이자 울지 마세요, 왜 웁니까? 잘 세탁된 손수건을 내민다.
“아니 그냥, 아카아시 많이 컸다 싶어서.”
“한 살 차이거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얼른 가세요.”
보쿠토는 그 수건을 쥐고 훌쩍이다 말했다. 이거 개학하고 돌려줄게, 맘대로 하라며 손 흔드는 아카아시를 뒤로 하고 어머니와 함께 차에 타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하얀색과 노란색이 섞여 화려하게 흐드러진 게 여간 예쁘지 않았다. 엄마 진짜 예쁘지, 향기 정말 좋아. 어머니는 아카아시 군이 정말 보는 눈이 있다 했다. 그 집 사람들은 좀 보는 눈이 있어, 케이지 군 어머니도 그렇게 우아하거든... 꽃향기처럼 퍼지는 말을 듣다 고개 돌려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차였다, 후쿠로다니 학원은 사립학교 중에서도 꽤 이름난 학교라 학생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 되는 집안 자제들이었다. 하지만 그 애는 공립이랬지, 중학교도 그닥 좋은 데 같지는 않았다. 흐음, 부드러운 백합 꽃잎을 만지작거리던 손 내려 다시 리본 부분을 꽉 잡았다. 곧 만날 수 있을까~ 합숙은 보통 6월이나 8월에나 있다던데 그때까지는 못 보려나? 진짜 특이한 애였는데. 후쿠로다니 학원 학생이 아닌 친구는 없는 보쿠토에게 그 남자애는 별세계 인이나 다름없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 고양이 같았다, 날것 느낌이 났다. 정말 특이했지, 보쿠토는 옆으로 뻗어 나온 프리지아를 창문 가까이 댔다. 유리창 여기저기 향기가 묻는다, 어머니가 다정히 말했다. 보쿠토, 꽃은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란다. 그럼 시들어. 선물한 꽃을 그렇게 다뤄서야 되겠니? 이리 주렴, 엄마가 갖고 갈게. 달리 제가 들 이유도 없어 그냥 석 내밀었다. 향기가 좋구나, 코타로. 케이지 군은 어디서 이런 걸 샀지? 역시 주문일까,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꽃잎을 덮는다. 보쿠토는 그냥 앞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모든 게 지루해졌다. 빨리 개학하길 바랐다.
방학 내내 지루했다. 할 일도 없었거니와 코노하는 홋카이도, 와시오는 오키나와, 사루쿠이는 교토, 아카아시는 유럽으로 가버려 달리 놀 사람도 없어서 그랬다. 결국 배구 연습도 계속 혼자 했다, 정말 재미없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벌써부터 끼워 달라 하자니 텃세가 있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성격이 좋대도 배구를 처음 시작한 1학년 시절 선배들 강짜를 겪어봤던지라 그런 생각이 들 뿐이 없었다. 물론 그 선배들은 다 고등학교 올라가며 배구를 그만뒀다지만 기억은 한순간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짜증났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여, 보쿠토! 드디어 고등부 왔냐! 자식, 오랜만이야! 중등부 시절 저를 예뻐해 줬던 선배는 지금 배구부 주장이 됐다. 물론 중등부 때도 주장이긴 했다. 선배,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물은 보쿠토에게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럼, 잘 지냈지. 너 스파이크가 더 날카로워졌다는 얘기 들었어, 사실 한 번 보러도 갔었고. 썩 괜찮던데? 다른 선배들이 와그르르 웃는다. 주장이 곧 표정을 굳혔다. 과거 너 괴롭힌 애들은 벌써 1년 전 쯤 다 배구부 그만 뒀어, 연습량 못 따라 가겠다더라. 그러니까 너도 안심하고 운동해, 보쿠토. 지금 적어도 여기에서만큼은 너 시기할 사람 없으니까. 보쿠토는 하하 웃었다. 그럼 다행이죠, 쓸데없는 데 신경 쓰기 싫으니까. 그 어깨를 탁 친 주장이 얘는 묘하게 냉정한 데가 있어, 웃고는 곧 고개를 돌려 애들을 집합시켰다. 고등부라 그런지 공기가 달랐다. 다들 훌쩍 키가 큰 데다 체격도 엄청나게 좋았다. 으씨, 식사량 늘려야겠네. 주눅 들기는 커녕 그런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방학 동안 꽤 쌓인 듯싶었다. 빨리 공치고 싶어, 연습할래. 얼른, 생각하는 귓가를 냉엄한 목소리가 후려쳤다. 저번부터 우리 팀 수비력이 약해졌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1학년들 실력도 볼 겸 수비력이 좋은 팀과 연습 경기를 잡았어. 우리보다 공격력은 약하지만 수비만큼은 도쿄 강호들 중에서도 톱 급인 곳이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수비하는지 잘 배우기를 바란다, 나도 배우겠지만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알았나? 부원들이 예! 크게 대답했다.
“상대는 네코마 고교다.”
3일 뒤 우리 여기서 연습경기를 할 거야, 알았나? 첫 경기는 대부분 1학년으로 할 거고 두 번째 판은 주전들끼리 한다. 알았나? 여기저기서 역시,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쪽 수비가 엄청나긴 하지? 견고하달까, 질기달까. 어쨌든 엄청 짜증나는 타입. 수군대는 선배들에게 어떤 팀인데요? 조용히 물었다. 주장, 1학년들이 네코마 팀컬러를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2학년 선배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말하자 좋은 자세야, 칭찬이 따랐다. 네코마는 리시브가 아주 뛰어난 팀이다. 하지만 공격력은 별로야, 늘 원투펀치가 없어. 거의 늘 원 펀치로 끝난다, 후속타가 없는 팀이야. 방어를 중심으로 점수를 쌓는 팀이지, 그러니만큼 다들 체력도 괜찮은 편이다. 초반에 기세를 잡아 끝내는 쪽이 좋아. 그렇다고 서두르다 자멸해서는 곤란하니 적당히 눈치도 봐야겠지. 공식시합이 아닌 연습시합이니까 상대 약점을 파악하는 방법을 연마하도록 해! 체육관 가득 네! 하는 대답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다가온 코노하와 사루쿠이가 나 저기 이름 처음 듣는데 보쿠토 너는 알아? 물었다. 알긴 하는데, 다음 말은 먹혔다. 나도 이름만 알아, 쪼그려 앉은 코미가 싱겁다는 듯 웃었다. 여느 때처럼 코트를 확인하는 와시오를 불러와 어쨌든 그런 팀이라니까 우리 1학년들 저력을 보여주자! 어깨동무를 했다. 저 다섯 여전하네~ 여전히 친하고 여전히 시끄럽구만! 재밌게 사는 녀석들이야, 즐거운 웃음소리가 체육관을 울렸으나 보쿠토의 마음속은 되레 못처럼 고요해졌다.
그 애는 네코마로 갔을까.
네코마로 갔을까, 배구부는 들었을까. 몸은 건강할까, 여러 생각이 엉켜 도통 머릿속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이름 부분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몰래 아대 속을 들여다보았다. 쿠로오 테츠로, 그 이름만이 그림자 안에서도 선명했다. 어쩜 그 이름 자체가 그림자인지도 몰랐다.
3일은 금방 지났다. 연습이 힘겨워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세 밤 자니 그 날이었다. 엄마 나 오늘은 늦어, 연습시합 있어. 그리 말하고는 운동화를 꿰어 신는 보쿠토에게 어머니는 힘내라는 인사를 보냈다. 힘내렴 코타로, 잘해야 해? 우리 코타로는 언제나 잘하지만. 보쿠토는 씩 웃었다. 오늘도 잘할 거니까 걱정 마! 대답은 듣지 않은 채 뛰어나와 학교로 향했다. 이쪽 블록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후쿠로다니 학생들이라 대부분은 행선지가 겹쳤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배구부 선배나 동기, 혹은 반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만났으면 좋겠어, 보쿠토는 반쯤 뛰듯이 걸으며 그리 생각했다. 머릿속 정리할 거니까, 부러 인적 드문 길을 걸어 학교까지 갔다. 보쿠토 안녕, 인사하는 친구들에게는 어 안녕, 대충 손을 흔들어보였다. 머릿속 복잡한데 얘기 거는 애들 싫어, 그렇지만 나 좋아해서 인사해주는 걸 테니까. 성정이 매정하지 못해 인사조차 잘 거절하지 못했다. 수업종이 울린 순간 모두 조용해졌다. 배구부나 농구부, 축구부 등 고등부 톱을 달리는 운동부들이 몇 있긴 하지만 그 선수들도 대부분은 학업파지 운동파가 아니었다. 보쿠토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배구를 좋아하는 데다 잘하기도 하지만 업으로 삼을 정도는 아니다. 그냥 고등학교 시절을 불태울 화끈한 것 정도, 보쿠토는 작게 고개를 기울여 칠판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즐거우니까, 심을 잘 뱉어내지 못하는 샤프를 흔들었다.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숨죽이고 있는 편을 택했다. 빨리 네코마 만나고 싶은데, 자꾸 속이 뒤엉켜 깊은 숨만 내쉬었다. 네코마 만나고 싶어... 빨리 시합... 결국 보쿠토는 이미 잔뜩 튼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은 잘 가지 않았다, 그 좋아하는 점심조차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좀비처럼 시간을 보내다 수업 마무리 종이 치자마자 체육관으로 달려 내려갔다. 복도에서 마주친 애들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맘이 급했다. 선배들조차 하나 오지 않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는 코트 구석에 앉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몇 분이 지나고서야 서로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들어오던 선배들은 보쿠토를 보고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아니, 뭐하는 거야 보쿠토! 왜 이렇게 일찍 왔냐! 어쩐지 체육관 문이 열려 있더라니! 주장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지? 다른 1학년 애들은? 보쿠토는 애매하게 웃었다.
“그게, 시합 빨리 하고 싶어서...”
잠시간 정적이 흐르다 곧 빵 터졌다. 진짜 보쿠토 답다! 너 진짜 최고다, 배구왕 해라 배구왕. 배구왕 보쿠토 어떠냐, 진짜 열정 최고 뛰어난 사람 인정한다. 인정! 저마다 엄지 한 번씩 치켜들어 보이고 탈의실로 들어가는 선배들 뒷모습을 보다 으쌰, 힘 한 번 줘 일어났다. 네코마는 언제 온대요? 아예 유니폼을 입은 채 온 주장을 향해 그리 물었다. 음? 아, 곧. 곧 올 거야, 한 20분만 기다려 봐. 아, 이거 시합 준비 좀 도와줄래? 넌 이미 옷 다 입었으니까. 그나저나 다른 1학년 애들은 정말 왜 안 와? 이것들, 기합이 빠져가지고. 보쿠토는 이렇게 열정 넘치는데 말야? 장난스럽게 말하는 주장과 마주 웃고 나서 열심히 시합 준비를 도왔다. 1학년들은 십 분이 지나 왔다. 아, 미안 보쿠토! 진짜 미... 히익 주장 죄송해요! 허리 굽혀 인사하는 코노하와 코미, 사루쿠이, 와시오를 보며 웃던 보쿠토는 곧 따라 들어오는 다른 유니폼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고등학생들은 역시 다른지 몸집이 후쿠로다니 선수들 만만찮게 컸다. 안녕하세요, 네코마 고등학교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한 사람이 주장인 모양이다. 막 옷 갈아입은 선배들과 인사한 네코마 선수들은 곧 스트레칭에 들어갔다. 걔는 어디 있지, 왔겠지? 목 쭉 뺀 채 그 빨간 옷 사이를 뒤지다 겨우 그를 찾아냈다. 여전히 나른하니 기운 없어 뵈는 얼굴이었다. 인사라도 건넬까 하다 시합에 방해될 것 같아 꾹 눌러 참았다. 그냥 고개만 몇 번 휘휘 돌려 저를 찾아낸 그가 안녕,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안녕, 뚱하게 마주 인사하니 또 씩 웃는다. 살짝 말려 들어간 색 옅은 입술 아래로 긴 송곳니가 드러나 대단히 사나운 인상이 됐다. 와, 진짜 인상 더럽지. 호감과는 별개로 인상이 더럽긴 더럽다, 절레절레 고개 젓고는 친구들 사이로 돌아와 중학교 때 전술을 펴보는 게 좋을지 어떨지를 의논했다. 역시 안 통하지 않을까, 그냥 선배들 따라하는 쪽이 좋을 지도. 그 심드렁한 말을 반박한 사람은 코미였다. 저쪽은 아직 우리 전술 모를 테니까 써 봐도 괜찮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지, 게다가 선배들도 지금 우리한테 대단한 걸 바라지는 않을 걸? 대패만 안 해도 다행이라 생각할 것 같은데, 길게 오간 의논 끝 도출된 결론은 하나였다. 아카아시가 없으니까 영 말이 안 풀리네! 반대로 저쪽은 꽤 스무스하게 얘기가 돼가는 듯했다. 하기야 수비밖에는 강점이 없으니 달리 의논할 사안도 없긴 했다. 후쿠로다니보다 부원수가 적은 네코마는 첫 시합부터 2학년이 몇 명 들어가기로 했다. 져도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그냥 너희가 가진 걸 다 보여 봐, 그리 당부한 주장에게 네! 크게 대답한 1학년들이 코트로 들어섰다. 통성명부터 하는 게 낫겠죠? 탈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3년은 계속 얼굴 볼 테니까요, 네코마도 동의했다. 다른 1학년들이 자기소개를 끝내자마자 보쿠토는 평소보다 크고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쿠토 코타로, 1학년입니다. 포지션은 윙 스파이커!”
유명했지, 보쿠토 코타로. 나 중학교 때도 유명했다니까, 엄청난 꼬맹이 하나 있다고. 이 지역은 사쿠사랑 쟤가 제일 유명했지? 이젠 고등부에서도 이름 날리겠네. 네코마 쪽 몇몇 2학년들이 그리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 부러 가슴을 더 넓게 폈다. 저 애 이름은 뭘까, 순서가 지나가는 순간마다 가슴이 조였다. 콱콱 숨이 막혀와 엎드려 헐떡이고만 싶었다. 마침내 남자애 차례가 왔다. 이리저리 삐죽인 검은 머리카락에는 왁스 뻣뻣한 기가 하나도 없다. 몇 달 전보다 조금 더 큰 듯한 몸이 웃는다.
“쿠로오 테츠로입니다.”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1학년이라고 한 듯도, 미들블로커라 저를 소개한 듯도 했으나 다 이명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쿠로오 테츠로, 쿠로오 테츠로... 다른 1학년들도 놀란 것 같았으나 제 정신 잡기 바빠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쿠로오 테츠로라고, 몇 달간 그렇게 찾아왔는데. 마침내 이름을 찾은 운명이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나른한 눈 아래 웃음이 고인다. 손이 자꾸 떨려 결국 우득 소리 나게 맞잡았다. 그렇구나, 얘가 쿠로오 테츠로. 시야가 맑아지도록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상대는 여전히 웃고만 있다. 그 손목과 다리, 목은 놀랄 만치 깨끗하다. 그럼 시합 개시하겠습니다, 각자 자기 위치로. 멍하니 섰는 보쿠토를 잡아당긴 코노하가 야, 인마. 너 주전 들어야지, 주전 들어야 쟤랑 계속 만나든 어쩌든 할 거 아냐? 날카롭게 속삭였다. 아, 그렇지. 그렇지, 빠르게 정신을 수습해 제자리를 찾아 섰다. 상대 포지션이 미들블로커라서인지 자꾸 숨이 섞였다. 시선이 높아진 걸 보니 방학 동안 키가 더 큰 게 분명했다. 이름이 쿠로오야? 나즉히 물었다. 응, 쿠로오 테츠로. 왜? 그 목소리는 여상하다. 긴장이라고는 전혀 없다. 보쿠토는 이를 악물었다. 네가 그 쿠로오 테츠로란 말이지, 허옇게 움직이는 점을 쫓다 그를 쳐낸 순간 늦네, 쿠로오가 뛰었다. 원터치! 상대 윙 스파이커가 뛰어와 팔을 휘둘렀다. 과연 2학년은 대단했다, 박아 넣은 자리에서 김이 나는 것만 같아 잠깐 뒤 돌았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너 자꾸 내 이름 묻더라, 상대가 입 벌려 웃는다. 벌겋게 부은 팔이 아플 텐데도 팔 한 번 털지 않는다.
“왜 자꾸 물어? 내 이름 원래 알았어? 꽤 맘에 드는 눈치네, 줄까?”
대답하는 대신 손목을 가리려 찼던 아대를 벗어 이름을 드러냈다. 표정이 미미하게 일그러졌다. 줄 필요 없는데, 이미 있거든. 이렇게 확실하게. 긴 송곳니가 완전히 드러난다. 내 이름이잖아. 마치 대포알 마냥 무섭게 공이 오가는 와중 쿠로오가 상의를 살짝 들어보였다. 배는 희었다.
“나는 아무데도 없는데.”
어디 한 번 이름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보라는 양 웃는다. 난 노네임이어도 상관없는데, 몇 달 전 들은 그 말이 생각나 갑자기 치솟은 분노를 잔뜩 담아 공을 내리치자 쾅,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다. 저거 괴물 아냐, 네코마 리베로가 팔을 붙잡았다. 잠깐 타임! 웅크린 리베로에게 가 상태를 확인하는 주장인 듯한 남자를 보다 천천히 시선 돌려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이다, 좀처럼 표정도 감정도 찾기 어려워 빤히 쳐다보는데 선수 교체 사인이 울렸다. 보쿠토는 말없이 다리를 털었다. 보쿠토 쟤 오늘 왜 조절 안 돼? 엄청 빡친 것 같은데? 저 쪽 미들블로커 중 트래시 토크 잘 하는 애 있었나? 혹시 저 1학년? 선배들이 놀라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보쿠토를 제외한 나머지 1학년들만이 발을 굴렀다. 너무하네, 쿠로오가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너, 무, 하, 네. 숨이 끊기는 순간마다 보쿠토의 이성도 끊어졌다. 결국 그 날 연습시합은 난장이 났다. 인터하이나 합숙 전 선수들을 부상당하게 할 수는 없으니 오늘은 더 이상 연습시합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고는 빠르게 짐 챙기는 네코마 선수들을 향해 주장이 허리를 굽히거나 말거나 보쿠토는 제 일이 급했다. 쿠로오 테츠로,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보쿠토 코타로, 이리 안 와? 무슨 짓이야, 다른 팀 1학년한테! 아무리 호승심이 일어도 그렇지! 그 말은 보쿠토가 아대를 벗어 거의 팽개친 순간 잦아들었다. 압박감이 눌러 죽였다 해도 좋았다.
“이거 네 이름 맞지.”
쿠로오가 답답하다는 듯 웃는다. 맞대도, 그런데 나한테 네 이름이 없다니까? 아직 안 나타났는지도 노네임인지도 모르지. 내가 지금 너한테 묶여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니까? 왜 화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보쿠토 코타로 군~? 양측 주장이 입을 떡 벌렸다. 이래서는 화를 내거나 책임을 물을 수가 없음을 깨달아서도 그랬다. 인상 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보쿠토에게 또 애매하게 웃어 보인 쿠로오가 진짜 알 수가 없네,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이름 나오고서 생각하십시다, 그때는 연인이든 결혼이든 해드릴게.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이릅니다, 후쿠로다니 중등부 전 에이스 님~ 게다가 난 폭력적인 사람은 딱 질색이라서 너 같이 감정 조절 못하는 사람이랑 살 바에야 그냥 노네임이고 싶거든요. 성격 죽이는 법을 배우시든가? 그럼 난 간다, 잘 있어라. 핸드폰 번호 필요하냐? 보쿠토는 저도 모르게 엉, 고개를 끄덕였다. 폰 번호는 필요해. 쿠로오가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네 핸드폰도 줘. 난데없는 번호 교환식이 일어났는데도 선배들은 아무도 뭐라하지 못했다. 운명을 건드렸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몰랐거니와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도 그랬다. 이게 뭐야? 미친 건가? 아니지,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한참 혼란스러워하던 후쿠로다니 배구부 선배들은 네코마가 완전히 떠나고서야 겨우 보쿠토를 붙잡고 구구절절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운명이라니 어쩔 수 없지, 선배들은 그런 표정을 지었다. 저쪽에서도 이해해 줄 걸, 운명이니까. 네임 2세대들에게 네임이란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어느 순간 훅 내려와 정신을 앗아버리는 인간은 절대 대항할 수 없는 것. 보쿠토가 운명을 만났다는 걸, 선배들과 다른 1학년들은 결국 어깨 몇 번 으쓱이고 자리를 떴다. 보쿠토만이 그 자리에 남아 계속 상황을 곱씹었다.
내 이름이 아직도 없단 말이야.
하얗지는 않아도 부드러워 뵈기는 했던 그 목덜미와 허벅지, 발목, 손목이 생각나 이를 갈았다. 그 아무 데도 내 이름이 없단 말이야, 갑자기 화가 치밀어 무작정 가방만 맨 채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어떻게 내 이름이 없을 수가 있지, 난 있는데. 물론 나도 나타난 지 몇 달 안 됐지만... 방금 전 받은 번호에다 전화라도 걸어볼까 했지만 성질 급한 사람은 싫다 한 게 생각나서 꾹 눌러 참았다. 아, 젠장 진짜. 어떻게 해야 해? 운명인데! 온 세상이 짜증이었다. 눈앞을 가리는 벚꽃마저 귀찮았다.
운명이다, 우리 같이 살아야 해. 이 한 마디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서 몇 년을 살아온 보쿠토로서는 도통 이 상황이 납득가지 않았다. 왜 사귀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상대한테 아직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잖느냐고 했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됐다. 어차피 곧 나타날 텐데? 게다가 노네임일 수도 있잖은가, 한 쪽이 이름을 가진 이상 당연히 사귀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해준 조언대로 꽃이며 선물을 정성껏 준비해 예쁜 쇼핑백 가득 담았다. 그냥 이대로 들고 가기는 부끄러우니까, 그를 꽉 끌어안은 채 약속 장소까지 가니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지금이 딱 세 번째인데도 낯설지 않았다. 쿠로오! 부르자 느릿히 돌아본다. 긴 송곳니가 슬쩍 드러난다. 아무래도 저 송곳니가 인상 안 좋게 만드는 것 같아, 잠시 생각하고는 쇼핑백에서 꽃다발부터 꺼냈다. 야, 이거 받아! 순간 쿠로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뭐냐는 듯한 표정을 본 순간 갑자기 민망해져 이거, 너 주는 거라고! 받으란 말야! 그 품 깊이 밀어주었다. 장미가 자꾸 그 나른한 얼굴을 가려 비스듬이 방향을 틀어 안겨주었다. 이게 뭐냐, 우리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냐? 그리 물은 쿠로오를 보다 그렇긴 하지만 곧 사귈 사이잖아, 아니야? 맞는데, 입술을 삐죽였다. 찰나 어이없다는 웃음이 터진다. 끝이 말라 자꾸 갈라졌다. 야, 너 진짜 뭔가 착각하나본데. 갸름한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가락은 남자답게 예쁜 데다 길었다.
“내가 네놈 이름이 있었어도 말야, 바로 사귀지는 않았을 거거든? 상황 보고! 성격 보고! 그러고 괜찮으면 만났겠지. 이름 있으면 다 사귀어야 하냐? 아, 물론 다 사귀긴 하지. 그런데 난 아니거든, 특별해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러기가 싫어. 알았어? 마음 없는 결혼 하기 싫단 말야. 게다가 난 아직까진 혼자가 편해, 게다가 이름도 없어. 노네임일 수도 있단 말야, 노네임이랑 결혼해봐야 운명이 아무런 혜택도 안 주는 거 알지? 그냥 너 혼자 있으나 결혼하나 똑같은 거 알지? 그럼 그냥 우리 둘 다 혼자 사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성격이 안 맞을 수도 있잖아, 내가 보기엔 우리 둘이 성격 안 맞을 것 같아. 오케이? 정말 편찮은 표정인데 내가 오케이니까 오케이인 거야. 어쨌든 난 강제결혼 싫어.”
마음 없는 결혼,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박혔다. 두려워 어쩔 줄 몰라하던 아버지가 생각나 마음 없는 결혼이 뭐야? 그 마음이라는 게 뭐야? 사랑이야? 물었다. 어쩐지 아버지와 달리 쿠로오 테츠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저희 목줄을 틀어쥔 운명마저도. 사랑, 쿠로오가 희미하게 웃는다. 죽은 단어 아닌가, 그거? 반쯤 기울인 고개가 나른했다. 아직 섹시하다는 표현은 쓰기 싫었다, 그 표현을 쓴 순간 그에게 패배할 것 같았다. 난 잘 모르겠어, 아버지가 설명해주지 않으셨어. 물어봤는데 자꾸 피하셨거든, 못 들었어. 알려줘. 그 나른한 얼굴 가득 뜬 미소는 희미하거나 나른하다. 무조건 둘 중 하나다, 다른 감정은 잘 비추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희로애락조차 잘 보이지 않으면서 사랑을 운운하는 이 사람을 영 알 수가 없어 팔짱을 끼자 글쎄, 잠시 말을 삼켰다. 사실 나도 사랑은 잘 몰라, 보쿠토. 목소리가 나즉했다.
“그냥 가벼운 걸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네 손목에 새겨진 이름보다는 낫겠지. 누가 기르는 고양이처럼 맘 없이 결혼해 새끼 낳기는 싫어.”
운명이라고 그런 맘 없이 고백해대는 너도 싫다고. 운명이 부리는 하수인이야 뭐야? 딱 그 꼴이네. 내가 네 이름이라도 있으면 몰라, 아무데도 이름 없거든. 벗겨 봐도 좋습니다. 저도 모르게 말했다. 그래도 돼? 꽃다발이 펄썩 떨어졌다. 장미향 두른 침묵이 목을 죄인다. 잘못했습니다, 곧바로 사과한 보쿠토와 허리 숙여 눈을 맞춘 쿠로오가 씩 웃었다.
“패기 좋다.”
검은 재킷이 가슴 아래로 흐른다. 이제 보니 그 눈은 나른하게 처져 있었다. 눈, 꽤 예쁠지도... 생각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쿠로오는 미아방지용 팔찌처럼 손목을 가린 제 이름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이거 진짜 내 이름이네, 어쩌다 불쌍하게 내 이름을 가졌냐? 안타깝다는 듯 물었다. 내가 아냐, 갑자기 억울해져 입술 툭 내민 채 속 깊이 담았던 말을 모두 꺼냈다. 나도 네 이름 갖고 싶었는 줄 아냐? 나도 완전 조그맣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쁜 애 이름 갖고 싶었다고! 아카아시 짝은 그런 앤데! 나 남자 전혀 안 싫어하는데 내 취향은 작고 귀여운 거란 말이야, 알았어? 넌 작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고! 심지어 무섭게 생겼다 아냐? 게다가 내 고백도 안 받아주고! 심지어 너 피부도 안 하얘! 부드럽긴 하냐? 내 이상형 피부 희고 부드러운 데다 귀엽기까지 한 애였거든! 넌 우선 저기서 두 개 에러니까 피부라도 만져보자. 아, 나 그리고 다갈색 머리와 예쁜 눈 가진 사람을 바랐는데 넌 눈도 안 예쁘고 머리카락도 새까만 색이잖아! 전혀 내 이상형 아니라고! 나도 할 말 많아! 너만 불만인 줄 아냐! 나도 존나 불만이거든! 씨근대는 보쿠토를 보다 팟, 웃은 입술 사이서 야, 너 진짜 나 별로라 생각하는구나. 여기 앉아 얘기할래? 상냥한 말씨가 흘러나왔다. 아님 카페라도 가? 뭐 좋아하는 음료 있어? 꽃다발로 뺨 맞으리라고 생각했건만 이번에는 난데없이 또 친절을 베푼다. 정말 종잡지 못할 사람이다, 그냥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제 손목을 잡아 끄는 등은 저만큼은 아니어도 꽤 널찍했다. 뭇 여자애들이 꽤 좋아할 성 싶었다. 그런데 얘는 목소리부터가 엄청 좋긴 해, 보쿠토는 절 살살 꼬여낸 며칠 전 그 전화 속 목소리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재차 절레절레 저었다.
발단은 그제였다. 연습시합을 완전히 망쳐놓고서 딱히 쿠로오에게 전화할 명분을 얻지 못해 계속 고민만 하다간 결국 너희 선배는 괜찮냐 묻기로 했다. 제게 얻어맞아 다친 데다 이제는 이용당하기까지 하는 그 이름모를 선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은 제 운명이 더 중요했다. 망설임 없이 단축번호 8번을 눌러 전화를 걸자 차단은 안 해놨는지 제대로 신호음이 갔다. 헉, 가잖아. 얘가 날 안 차단했어? 당장 차단할 줄 알았는데, 제가 더 놀라 핸드폰 액정만 쳐다보는데 여보세요? 그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파가 약간 깨져서인지 실제보다 더 섹시하게 들렸다. 어쩜 이쪽이 진짜 목소리인지도 몰랐다, 보쿠토는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서는 말했다. 쿠로오 테츠로 맞으시죠? 쿠로오가 웃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 보쿠토 군. 숨을 멈췄다 저기, 너희 선배 분... 내쉬었다.
-그거 물으려고 전화한 거 아니지? 본론은~?
“만나주세요.”
-인성 별로구나? 어떻게 네가 다치게 한 사람 안부도 안 물어보지?
“그 선배는 괜찮아?”
-영혼 없는 사과 안 받아~ 나랑 통화해보려고 다른 학교 사람도 막 팔아먹는 사람이 하는 사과는 별로다. 아,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는 10점 줄게. 마이너스 80에 플러스 10, 이야 30점! 축하해. 30점 받으셨습니다.
야, 너 지금 나 놀리냐? 아니, 욱한 거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선배 안부는 진짜 물어보려 했었던 거고요, 그러니까 나랑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해달라고. 아니 운명인데 왜? 왜 안 만난대? 응? 한참 이어지던 하소연을 그래서, 탁 끊어낸 나른한 목소리가 잘게 웃었다. 결국은 만나자는 얘기지? 좋아. 어디서? 몇 시? 언제? 사람 놀리는 실력이 아주 수준급이다. 제 왼 손목을 차지한 그 검은 이름자가 미워 이를 갈았다. 내일 모레, 너희 학교 앞! 내 배려야! 순간 핸드폰이 폭발했다. 으, 하하하학! 아하하하하, 배려! 배려래! 한 번 터진 웃음은 도통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런, 그런 말은, 본인 입으로 하는 게 아닌데! 남이 그렇게 느껴야 배려지! 아, 어쨌든 배려 고맙습니다! 핸드폰을 끄지도 않았건만 울고 싶어졌었다. 배려, 배려래! 그 높은 목소리가 자꾸 귀를 찔러 고개를 숙였다. 울고 싶어, 아니 울래. 훌쩍이는 보쿠토를 전화 너머에서 다가온 목소리가 달랬다. 미안, 미안해. 아, 너 그런데 좀 귀엽긴 하다. 하지만 사귀지는 않을 거야, 긍정적인 대답 아니어도 괜찮으면 나와서 밥이라도 먹자. 내가 살게, 너무 비싼 건 안 돼! 난 너 같은 사람이 아니거든, 그럼 끊어! 내 이름 잘 챙겨 줘~ 딸각 끊긴 전화를 보다 결국 울어버렸다. 왜 안 사귀어준대? 나 귀엽다며! 대답해줄 사람은 없어 모든 울음을 혼자 갈무리해야했다. 왜 나랑 사귀어주지 않아? 우린 운명인데. 자꾸 눈물이 흘러 밤 새워 울다 등교했었다. 다른 애들이 무슨 일이냐고, 혹시 그 운명 때문이냐고 걱정해줄 적에도 아무 말 못한 채 그저 입술만 깨물었었다.
그리고 그 약속 날이 오늘이다, 보쿠토는 마주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그 얼굴을 보다 손을 뻗어 제 망고 스무디를 쥐었다. 커피 못 마셔? 별 의미 없는 말인데도 놀림처럼 느껴져 인상을 팍 쓰자 못 물어봐? 또 태연하게 묻는다. 몸 생각해서. 카페인 안 좋으니까, 게다가 나 아직 성장기고. 너 몇 cm이야? 긴 손가락이 하나 둘 접힌다. 으음~ 정확히는 안 재봤는데 아마 183cm. 넌 얼만데? 보쿠토는 입술을 한 번 핥았다. 179cm. 더 클 거야! 놀릴까봐 급박히 덧붙인 말인데 의외로 그는 진지한 태도로 받았다. 맞아, 아직 고1이니까. 게다가 몸 관리도 철저하네, 잠은 잘 자지? 그럼 더 크겠네. 너무 걱정 마, 사람마다 크는 시기가 다 다르니까. 넌 나중인가보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자꾸 눈길이 갔다. 여전히 하얀 손목을 보는 시야 끝으로 초커를 한 여자애들이 지나갔다. 나 어제 내 남친이랑... 분명 저 남친이란 운명을 가리키는 말일 터라 갑자기 풀이 죽었다. 나도 이름 있는데... 갑자기 또 따끔거리는 손목을 잡아 숨기니 이번에는 곤란하다는 듯 웃는다. 이름 보여도 괜찮아. 보쿠토는 대답하지 않는다. 차마 지금 저희 테이블 옆을 지나친 여자애들이 부러워서라고는 하기 싫어 그냥 그런 거 아니야, 입술만 핥았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더 티 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품하는 척했다. 마침내 쿠로오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보쿠토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이제야 본론이다, 가지런히 놓인 그 손을 훑다 잘 모르겠다는 말을 꺼냈다. 잘 모르겠어,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쩐지 조금... 부정적으로 보여.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이나 외치는 감정이잖아. 현명하지는 못한 감정 아닐까? 뭔가 좀, 미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본 영화가 그랬거든, 막 잡으러 쫓아다니고. 미친 것 같았어. 그거 설명해주시려던 아버지도 그런 표정 지었다고. 모르겠어. 쿠로오가 뿌옇게 웃었다. 안개 낀 유리창마냥 표정이 더듬했다.
“그런 거라고 생각해...”
갑자기 목소리가 멀어졌다. 긴 손가락이 일회용 플라스틱 뚜껑을 두드린다. 툭, 툭, 그 소리가 묻어버린 목소리를 들으려 몸을 좀 더 기울인 귓가로 파고든 목소리는 부드럽다. 온기가 가득했으나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따뜻함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미친 감정이라고 생각해, 사실 나는 사랑이라는 걸 본 적이 있거든. 보쿠토가 눈을 크게 떴다. 사랑을 본 적이 있어? 언제?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은 사람들이 다 흘긋흘긋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보쿠토의 기세에 눌린 나머지 곧 다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아예 관심까지 끄지는 않았다. 저마다 귀 한 쪽 씩은 이쪽을 향해 열어둔 듯 보였다. 아, 실수했네. 입술 꽉 깨문 채 인상 찡그린 보쿠토를 톡 건드린 손이 일어나, 천천히 말했다. 걸으면서 얘기하자. 그게 낫겠어, 보쿠토 역시 그 말이 옳다 생각해 서둘러 쇼핑백을 챙겨 일어났다. 아, 맞다. 이거 네 거, 선물이야. 받아, 건네주니 고맙다는 말만 하고 받지는 않는다. 왜 안 받아? 이마저도 안 받아줘? 고백도 안 받아주고 선물도 안 받아주고, 대체 네가 받아주려는 게 뭐야?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으르렁대는 보쿠토 쪽으로 고개 돌린 얼굴은 역시 모든 게 희미했다. 낮달 같은 느낌이었다.
“사랑.”
순간 말이 막혔다. 소리 없이 이만 드러내 웃고는 멀어져가는 등을 서둘러 쫓아가 물었다. 너, 그거 내가 못 준다는 거 알아서 이러는 거지? 내가 아직 그거 모르니까? 긴 다리가 거침없이 계단을 내린다. 검은 운동화 코는 낡았다. 야, 운동화 사줄까. 이거 음, 이거 선물도 좀 받아라. 이거 비싼 거 아니고 트레이닝 복이야, 엄청 편하대. 그래서 산거니까 받아. 운동화 사줄까? 대답 없이 계단만 밟던 발이 곧장 멈춰서 돌았다. 사랑을 줘, 그럼 이까짓 거 다 받아줘. 네 그 허울 좋은 운명마저도, 그러고는 냅다 제 이름이 검게 새겨진 손목을 잡아 올려 입 맞춘다. 그 눈빛이 이글이글해 차마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손목만 꿈질거렸다.
카페를 나와서도 말없이 걷기만 했다. 사실 서로 취미도 생활상도 모르니 어떤 화제를 꺼낼 수도 없었다. 한참 걷다 어느 인적 드문 그늘 아래 이르러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분홍색 벚꽃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사랑 얘기, 계속 해주면 안 돼? 듣고 싶어. 나 궁금해.”
가져온 망고 스무디는 어느새 다 녹아 찰랑찰랑 흔들린다. 오렌지색 액체가 손 움직임을 따른다. 연분홍빛 작은 꽃잎 쌓인 벤치에 앉아 한참 앞만 바라보다 겨우 입을 연 쿠로오가 앉을래 보쿠토, 또 그리 물었다. 조용히 그 옆자리를 쓸어 앉아서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긴 손가락이 일회용 커피 컵 옆면을 만지작거린다. 사랑을 본 사람은 말이 느리다. 우리 엄마 아빠가 네임 1세대거든, 사실 네임과 네임 아닌 세대를 전부 살아본 사람이지. 너희 부모님도 그럴 거야, 그렇지? 가만 긍정했다. 사실 저희 부모님 세대는 거진 다 그랬다. 운명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지는 근 50년뿐이 되지 않는다. 너희 부모님은 사랑해서 결혼하셨어? 잠시 생각하다 잘 모르겠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아닐 것이다, 저희 부모님은 늘 미지근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는 하나 온전히 마음을 준 듯 보이지도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분명 사랑은 저런 게 아니리라 혼자 생각하고는 했었다. 쿠로오가 턱을 괴었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보였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했거든.”
정말 불 같이 사랑했다나봐, 집안 반대 다 무릅쓰고 결혼까지 했대. 그런데 웬걸, 그로부터 딱 1년 뒤 운명이라는 게 나타났다지 뭐야? 당연히 우리 부모님 몸에는 서로의 이름이 새겨졌지. 처음에는 뛸 듯이 기뻐했대, 드디어 우리가 운명임이 인정된 거라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제 우리 사랑을 반대하지는 못 할 거라고 기뻐했다나 봐. 그 상황은 딱 2년 갔지. 나 태어나고서 1년 지나서부터 두 분 사랑이 식기 시작한 거야. 의무감으로 사는 시기가 온 거지, 그런데 두 분 중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셨다더라고. 우리가 운명은 맞았을까? 그냥 같이 사니까 운명 징표를 찍어준 게 아니었을까? 우리 운명은 따로 있지 않았을까? 우리 진짜 운명은 누구였을까? 완전히 병이지, 병! 결국 우리 부모님은 불 같이 싸우기 시작하셨어. 그런데 어째, 이미 운명이 돼버린 걸. 원래는 운명이 아니었어도 운명이 돼버렸잖아? 헤어질 수도 없지, 정말 헤어지지 못해 사는 사이가 돼버린 거야. 처음에는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우리 집에는 그 온화한 따뜻함이 없어, 차갑지. 난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맞는데 정작 우리 집에서는 그 원천이 된 감정이 증발한 지 오래야. 자꾸 바람이 몰아쳐 벚꽃이 떨어진다. 머리 위 잔뜩 얹힌 꽃잎을 털어내려 손을 들었다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옆선만큼은 누구보다 예쁘다, 순간 목 끝까지 말이 차올라 뱉어버렸다. 그럼 차라리 운명을 따르는 쪽이 낫지 않아? 그럼 그 미지근한 따뜻함이라도 얻을 수 있을 거 아냐, 그게 낫지 않아? 아주 차가운 집에서 외롭게 사는 것보단 나랑 결혼해서 그 미지근한 따뜻함이라도 얻는 쪽이 낫지! 쿠로오가 커피를 쪽 빨자 볼도 보조개처럼 살짝 파였다. 음, 몇 개 정정 좀 하자. 우선 외롭지는 않아, 우리 엄마랑 아빠는 나한테는 엄청 잘해주시거든. 두 분 사이가 안 좋은 거지 내가 학대당하는 건 아냐, 오히려 두 분 모두 나는 보물처럼 다뤄주신다고? 또 꽃잎이 왕창 떨어졌다. 시선이 맞았다, 그 검은 눈에는 온도가 부족하다. 미지근함마저도 없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감정이 조금 부족하거든, 폭이 넓지 않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 장단은 잘 맞추지만 너처럼 직접 기분을 만들어내느냐면 그건 아니야. 엄마 아빠 눈치를 보며 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난 다른 사람 눈치는 잘 살피지만 내가 직접 감정을 피워내지는 못해. 승부욕이나 분노 정도는 가능하지만... 하여튼, 그래서 널 더 받아들일 수가 없어. 넌 내 운명이잖아, 그냥 내 집안 파탄 낸 운명 따르는 꼴밖에는 안 된다고. 그리고 난, 쿠로오가 멋쩍게 웃었다. 눈이 가늘게 휘었다.
“감정의 극단을 느껴보고 싶어.”
극단? 이번에는 보쿠토가 눈을 가늘게 떴다. 부가설명이 필요하다 느꼈는지 이번에는 쿠로오도 선선히 말을 낸다. 우리 엄마랑 아빠가 느꼈던 거 말야, 두 분 사이를 저렇게까지 몰아간 저 감정. 미지근한 감정만 살아남은 시대에도 죽지 않고 저렇게 서로를 양극으로 몰아가는 저 감정이 궁금해. 그럼 누군가와 사랑을 해야 할 텐데 적어도 운명인 너는 아니지. 너와 내 최대 온도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미지근함일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어떨까. 내가 노네임이거나 내 운명이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한다면? 그럼 엄마와 아빠가 느낀 그 온도를 나도 알게 되지 않을까? 그 사랑이란 거 말이야, 사람을 불태웠다가 얼려버리는 거. 난 운명보다 그게 더 무서운 것 같아, 아예 사람을 보기 싫은 걸로 만들어버리잖아. 난 여태껏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 보쿠토. 그래서 넌 아니야, 한 번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어 운명을 거절해버린다. 두려워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거의 벽이지 않은가, 눈 껌벅거리는 보쿠토를 감싼 미소는 색이 옅다. 지나치게 가벼운 데다 희끄무레했다. 그러니까 날 포기하든가, 긴 손가락이 얼굴을 가린다. 입술도 희미했다.
“사랑해봐.”
날 극단까지 몰아붙여 줘, 그럼 나도 널 사랑할게. 아니, 사랑하게 되고 말 거야. 운명 아닌 사랑을 가져와, 그럼 받아줄게. 네가 주는 건 모두 받을 거야. 선물도, 꽃도,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지. 어때, 보쿠토? 보쿠토는 쿠로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손에는 제가 준 꽃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이 뭔데?
들은 생각은 그뿐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이 뭔데? 정확히 알려준 다음 내기를 걸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무 치사하잖아, 쿠로오. 하지만 쿠로오 테츠로는 웃기만 할 뿐 다시 입을 열지 않은 데다 아버지는 물어봤자 절대 알려줄 리가 없었으므로 결국 오롯이 혼자 생각해야만 했다. 그 날 쿠로오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잘 가라, 보쿠토. 나중에 보자. 애프터 약속이나마 얻어내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 날은 억울해 잠도 못 잤을 것이다. 보쿠토는 돌아오는 내내 잃어버린 꽃과 정말 길들여지지 않은 고양이 그 자체였던 쿠로오 테츠로를 생각했다. 그만한 날것은 처음 봤다.
그 날이 지나고 다신 연락을 못하게 될 줄 알았건만 의외로 쿠로오는 자주 전화했다. 아직 폴더 폰이어서인지 문자보다는 메일을 더 많이 보내기는 했어도 안부만 알 수 있으면 아무 상관없었다. 쿠로오! 장난처럼 보낸 메시지에는 꼭 왜 그러십니까, 보쿠토 군~? 장난 가득한 답이 왔다. 다른 이들 속만큼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읽는 사람인 쿠로오를 속일 방도는 거의 없다 봐도 좋았다. 장난치려는 순간마다 그 눈이 따라왔다. 연습시합을 하고 주말마다 만나 놀면서 서로 잘 맞는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제게 맞춰주는 건지 정말 잘 맞는 건지 알기가 힘들어 하루 종일 고민하다 결국 나답게 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사랑은 조금도, 조금은커녕 아주 쥐뿔도 모른다, 눈치 봐야 맘 줄 사람도 아니다. 그럼 차라리 성격대로 가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그날부터 그냥 원래대로 대했다. 연습시합 온 쿠로오와 같이 마구 장난치다 선배들한테 혼나는 일은 거의 일상이 됐다. 너 때문이야, 진짜 너 때문이야. 서로 탓을 하다간 웃음 터뜨리기도 했다. 벌 서기 위해 손을 들면 이름이 적나라하게 보여 부끄러웠으나 정작 그 이름 가진 사람은 명찰도 안 달았는데 제가 쿠로오 테츠로라는 사실을 누가 알겠냐며 가슴만 내밀어댔다. 너만 알지, 너만. 너하고 나만 알지, 별로 예쁘지도 않은 웃는 얼굴로 윙크해대는 꼴이 정말 가관이었으나 놀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정말 안 웃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꼼질꼼질 주먹만 쥐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쿠로오의 몸에도 운명은 봄이 다 가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 제가 사랑을 깨달아야 올 모양이었다, 한숨이 나 주먹을 내리니 너 선배한테 혼난다? 더 대놓고 꾀를 피우던 놈이 그리 핀잔한다. 기울어진 얼굴이 달 같았다. 야, 그나저나 우리 합숙 있잖아. 말을 돌리자 오, 말을 돌리시겠다? 어디 해 봐, 무슨 말하시나 보자. 응? 다 눈치 챘다는 양 고개 끄덕이면서도 대화 타래를 끌어준다. 모든 일을 유연하게 처리해버리는 쿠로오 테츠로. 깜박깜박 셔터처럼 그 얼굴을 감아 내렸다. 너희 쪽은 다 간대? 괜히 또 네코마 얘기를 꺼내니 또 송곳니를 다 드러내고 웃는다. 어이없을 때 짓는 웃음이다, 이제 이 정도는 구분할 줄 알게 됐다. 머리 위로 나뭇잎이 흐른다, 길게 드리운 그림자에 꽃 그림자가 붙는다. 너는 말이지, 쿠로오가 웃음을 떨어뜨린다. 거짓말이 너무 어설퍼. 나른한 얼굴이 기울어진다.
“내가 가는지 안 가는지 궁금하다고 말해.”
팡, 상큼하게 터진 웃음이 라임처럼 온 세상을 형광연두색으로 물들인다. 아, 이게 뭐지. 갑자기 이름 새겨진 손목이 아파와 서둘러 손을 내려 감쌌다. 욱씬욱씬, 온 팔목이 뜨거웠다. 솜사탕처럼 물든 구름은 설탕 뿌리기 바쁘다. 내가 궁금하다고 말해,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세상이 완전히 본래 책을 찾고서야 겨우 안 궁금하거든, 한 마디 낼 수 있었다. 이제 아예 다리를 뻗어 앉은 쿠로오가 진짜입니까~? 씩 웃고는 고개를 젖혔다. 이름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한 목덜미는 원망스럽기만 하다. 난 가! 나랑 야쿠, 카이는 가고 다른 애들은 모르겠네. 고개를 아예 돌려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야쿠가 너희 그... 리베로인가? 작은 애? 그 머리 약간 주황색이랑 금색 사이고... 요즘 걔가 주전이지? 손짓발짓 다 동원해 설명하는 보쿠토 쪽으로 돈 색 옅은 입술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야쿠 앞에서 작다하지 마라. 진짜 죽는 수가 있어, 걔 작다는 말 진짜 싫어해. 대답하는 대신 입을 삐죽여 불만을 표했다. 어차피 걔랑은 얘기 잘 안 하는데, 뭐. 따로 만날 일이 뭐 있어? 웃음이 바람결 따라 날아갔다. 뭐, 합숙 가서는 얘기도 좀 하게 될 테니까. 너는 가지? 선배들이 새삼 나와 볼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먼저 누운 사람을 따라 길게 뻗었다. 나야 당연히 가지, 안 가서 뭐해? 땀에 눌었는지 자꾸 축축 처지기만 하는 몸을 빨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벌 땡땡이로도 모자라 수돗가까지 갔다간 분명 햇볕 쨍쨍 내리쬐는 운동장을 뛰게 될 터라 그냥 덥지 않냐, 발을 그늘 아래로 집어넣었다. 설마 나 쫓아오는 건 아니지? 어이없어 눈 감은 채 쏘아붙였다. 내가 그래서 가는 걸 거 같냐? 나 배구 좋아하거든, 배구 연습하러 가는 겁니다. 후쿠로다니 올해 전국 가야지? 내 목표는 전국 우승이라고, 전국 우승! 올해야말로 우시와카와 키류, 그리고 사쿠사 타도한다! 주먹 불끈 쥐고 팔 흔드는 보쿠토를 보다 슬쩍 그 이마 덮어준 쿠로오가 목표 멋있네, 씩 웃어보였다. 순간 시선이 멎었다. 꺼풀은 없는 마냥 가벼워지기만 한다. 몸을 굴려 일어나 앉아 그 얼굴을 마주보았다. 맴, 맴, 맴, 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랑이 뭘까?”
낸들 알겠냐, 알면 뭐든 했겠지. 우리 엄마한테 물어볼까? 그런데 우리 엄마한테는 물어볼 수가 없더라고, 너무 표정 안 좋아지셔서. 여하튼간 왜? 쿠로오가 뱉는 말들에는 늘 온기가 없다. 다정한 데다 상냥하지만 온기는 모르는 사람이 바로 쿠로오 테츠로다, 그 멀건 얼굴을 물끄럼 바라보다 모르면서 어떻게 나한테 사랑을 달라 그래? 입술을 삐죽였다. 그 사랑에 빠지면, 막 구름이 솜사탕 색으로 보이고 그러나? 아님 태양이 막 초록색이 되나? 그것도 눈 아픈 형광연두색. 너는 알아 쿠로오? 묽게 가라앉은 검은 시선 사이로 모르겠는데, 짧은 말이 가라앉는다. 만약 내가 쿠로오 너를 사랑하게 된다 치더라도 어떻게 알아챌 건데? 이거 완전 내가 손해 보는 내기 아냐? 색 옅은 입술이 희미하게 웃는다. 글쎄, 왠지 몰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긴 손가락이 가락을 마주 얽어온다.
“엄청 뜨겁지 않을까?”
우리 엄마랑 아빠, 불 같이 사랑했다 그랬거든. 그러니까 뜨겁겠지, 엄청 뜨거운 것 정도야 나도 알아챌 수 있을 거야. 미지근한 거야 맨날 느끼는 거고... 구름이 무슨 색으로 변하는지는 몰라도 사람 맘의 온도만큼은 잘 읽을 수 있어. 이 순간에도 느낀다는 말은 쓰지 않는 쿠로오가 신경 쓰여 그러냐, 그저 입술 거스러미만 뜯으니 덧난다? 또 씩 웃는다. 그만 웃어, 좀. 그만, 괜히 짜증이 나 자리에서 일어나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뭘 보냐, 난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하겠는데 넌 진짜 힘이 넘치는구나. 대단하다는 듯 박수 쳐주는 몸을 슬쩍 내려다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이제 체육관 들어가자. 이런 데 있다간 진짜 일사병 걸려 죽을지도 몰라, 설마 쌩쌩한 후배 둘 죽이려는 셈은 아니겠지. 이름이 적히지 않은 손목이 생소한지 또 몇 번 돌려본다. 네 왼쪽 손목도 원래는 이랬냐? 햇볕 때문인지 별 것 아닌 사소한 말에도 짜증이 치민다. 참자, 참자. 그저 참을 인 자만 덧그리다 그랬지? 나 중학교 3학년 때 네 이름 생겼으니까 원래는 이랬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쿠로오. 나 진짜 무지 더워. 점점 뒤틀려가는 분위기를 느낀 모양이다. 벌떡 일어난 쿠로오가 좋아, 나 먼저 들어간다! 냅다 체육관 문을 열어젖혔다. 선배님들, 저희 쪄죽겠습니다! 좀 불러주시지요, 이잉. 서글서글하게 굴어 선배들 기분을 완전히 풀어주고서야 슬금슬금 제 몸을 드민다. 보쿠토, 안 들어오냐? 덥다며? 빼놓았던 넋을 다시 집어넣고는 지금 가! 치사하게 너 혼자 가냐! 서둘러 발을 옮겼다. 이리저리 삐친 검은 뒤통수가 귀여웠다.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쿠로다니 학원 그룹이라 불리는 합숙은 규모가 컸다. 이타치야마나 노헤비 등을 제외한 도쿄 강호들이 오는 데다 다들 부원들이 꽤 많아 잘 곳이 부족할 정도였다. 밥은 또 얼마나 해야 하는데? 어머님들께서 도와주시지 않았어 봐, 정말 학교 매니저들 합숙 하루 하고 다 집 갔을지도? 1학년 매니저인 카오리가 농담처럼 한 말을 맞아~ 사람 정말 많지~ 그래도 주먹밥 정도라 괜찮아, 그 정도는 할 만 해. 그치 카오리쨩~? 나른히 이어받은 같은 학년 매니저 유키에가 방긋 웃었다. 진짜 귀엽다, 선배들은 얼굴을 붉히기는 했으나 이름이 벌써 나타난 사람이 태반이어서인지 딱히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무리해서 다가갔다간 운명에게 혼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지도 몰랐다. 선배들이 그러든 말든 보쿠토는 네코마 버스에서 내려 야쿠며 카이, 다른 선배들을 챙기는 쿠로오만 쳐다봤다. 야, 니 운명 뚫리겠다. 너 혹시 아직도 쟤랑 내외 중이냐? 설마 아직도 그렇겠냐는 듯 낄낄대며 웃던 선배들은 땅이 꺼져라 흘러나온 네, 아직... 섧은 대답을 듣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진짜 아직도 내외 중이라고? 쟤가 너랑 안 사귄대?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그렇다고는 답하기 싫었다. 자존심도 상하거니와 쿠로오 테츠로 쟤 그렇게 안 생겨서는 정말 이상한 애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싫었기에 지금은 누굴 사귀는 것보다는 배구가 더 좋대요, 입술 한 쪽만 올려 여유로운 듯 웃어보였다. 사태를 아는 1학년들이야 배구가 더 좋다는 소리 한다, 혀를 내둘렀지만 그들도 딱히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제 가방끈만 만지작거리는 보쿠토 쪽으로 고개 돌린 선배 하나가 별 의미 없이 물었다. 걔도 진짜 너만 한 배구 바보네, 너보다 더할 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걔 이름 올라왔대? 순간 목이 죄었다.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제 머리를 완전히 구워 버리는 듯해 가방끈만 더 꽉 쥐었다 으음, 네... 겨우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자꾸 소리가 막혔다. 벌써 고등학교 1학년도 반절이나 지나갔건만 쿠로오는 이름이 났다는 얘기를 해주기는커녕 연습시합 올적마다 후쿠로다니 샤워실을 빌려 씻기까지 하며 제 몸이 티끌 하나 없이 아직 깨끗하다는 증명 아닌 증명을 해보였다. 아직 이러니까 꿈 깨지? 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르나 이름까지 가졌는데 이렇게 쉬이 물러날 수는 없었다. 만약 쿠로오를 놓칠 경우 제 손목은 오롯이 혼자 남게 된다. 이름이 나타난 이후 그 부분만 계속 제 몸이 아니었다. 설마 그런 줄은 몰랐는지 어... 가방 꺼내던 손까지 멈춘 채 안절부절 못하기만 하는 선배에게 괜찮아요, 웃어보였다. 저도 중학교 3학년 여름에야 나타났고 지금 겨우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잖아요?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뭐. 요즘은 시기 꽉 채워서 나오는 애들도 많다잖아요, 쟤도 그 타입일지 모르지. 옆에서 눈치보다 튀어나온 선배들도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다. 내 친구도 요즘 떴다더라, 자기가 노네임인 줄 알고 무지 긴장했었대. 쟤도 그 타입일지도? 그런데 노네임 드물잖아, 그렇게 많진 않지? 평소처럼 그저 웃어 보이려 했건만 어째 들을수록 축축 쳐지기만 하는 게 곧 시무룩 모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 쪽으로 걸음 옮긴 뒤통수를 보쿠토~ 나른한 목소리가 쳤다. 얼른 돌아보자 언제 불렀냐는 듯 시침 뚝 떼고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선배들한테 인사부터 한다. 오, 네코마 배구 광 왔다. 혹시 제가 말한 얘기를 선배들이 그대로 읊어주기라도 할까 두려워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해 그저 눈만 굴려 웃는 쿠로오의 손목을 잡고 선배들 얘 놀리지 마요! 크게 외치자 또 와그르르 시끄러운 웃음이 터진다. 보쿠토, 너 지금 네 운명이라고 챙기냐? 진짜 다 컸네, 다 컸어. 우리 보쿠토가 이렇게 잘 커줘서 선배들은 고맙다! 원체도 목소리 큰 운동부 남고생들이 입 맞춰 소리 내 웃으니 이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다. 얼굴 시뻘개져 씨이, 그저 숨만 몰아쉬는 어깨 위로 갑자기 턱, 무게가 얹혔다. 왜 자꾸 애를 놀리십니까, 선배님들. 보쿠토 울지도 모른다고요? 웃는 목소리가 좋아 그냥 가만히 그 어린아이 취급을 듣기만 했다. 평소라면야 어린애 아냐, 쿠로오 너 뭐하냐? 했을 말도 오늘은 왠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선배들은 손가락만 꿈지럭대는 보쿠토와 그 옆에 서서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얼굴을 번갈아보다 그래, 운명은 봐줘야지 뭐! 어쩌겠어, 운명이시라는데. 아, 너희 둘은 이번 합숙 때 방 같이 쓸래? 네코마 쪽에는 우리가 양해 얻어 줄게, 묻고는 돌아섰다. 어쩔까, 보쿠토 군? 소곤거림이 사붓 흘러들었다. 평소에는 나긋나긋 나른하지만 톤을 낮추면 꽤 위험하게 들리는 목소리다. 선배님들께서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는데 역시 같이 잘까? 흥건해진 손바닥을 얼른 헐렁한 유니폼 바지춤 훔쳐 닦았다. 가방이 맴맴 울었다, 어디선가 우는 매미 소리인지도 몰랐다. 왜 그런 말을 해, 쿠로오? 나 놀리는 거야? 역시 속삭임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마음과 달리 조금 날카롭게 나간다. 숨이 잔뜩 긁혀 거칠었다. 글쎄, 쿠로오는 난감한 순간마다 그 애매한 말을 한다. 남들이 다음 말을 생각하려 잠시 쉬는 반 박자가 쿠로오에게는 글쎄, 다. 다른 사람이 말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인지 그냥 버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 패턴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놀리려는 거 아닌데, 어깨를 감싼 손가락이 파도 타기하듯 쫘르륵 움직인다. 긴 손가락이 유려하다.
“선배들이 먼저 말씀해주신 거기도 하고 그냥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싫음 말고, 그런데 진짜 놀린 건 아니야. 그건 믿어 줘, 이런 걸로 놀릴 바에야 아예 말 안 하는 타입이야. 그건 확실히 안다, 이제는 말로만 전해 내려오는 그 바람둥이처럼 생겨서는 의외로 사람 감정을 성실하게 돌봐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몇 달 부딪히는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지, 보쿠토는 새로 사 아직 길이 덜 든 신발코로 바닥을 몇 번 내리찍어 좁쌀보다 조금 더 큰 돌들만 튀기다 흘긋 옆을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하다는 듯 반 토막뿐이 없는 눈썹을 살짝 내린 그 얼굴을 보니 조금 마음이 풀려 그러든지, 그만 저도 모르게 그리 대답해버렸다. 오, 좋아. 그럼 내가 너희 선배들한테도 말한다, 어깨를 툭툭 치고는 또 앞서 걸어가 버린다. 선배님들~ 하는 목소리가 정말 넉살 좋아 정말 쟤는 뭘까, 고개 절레절레 젓는데 갑자기 뒤에서 다가와 방금 전 쿠로오처럼 어깨를 끌어안은 코노하가 야, 보쿠토. 너 마음고생 진짜 심하겠다, 함께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그치, 너도 알겠지. 잔뜩 울상 지은 보쿠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손에는 우정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뭐 혹시 음, 필요한 거 생기면 말하고... 도와줄 테니까... 우리들이 다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마. 내년에는 아카아시도 올 테고? 아카아시 있음 좀 상황이 진전되지 않을까? 순간 저도 모르게 그건 안 되지! 바닥을 굴렀다. 앞서 가던 선배들이 흘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그건 안 되지,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내년까지 이 상태로 있으란 말야? 올해 끝낼 수는 없어? 질질 끌어봐야 안 좋다고. 코노하가 입술을 옴쭉 내밀었다. 동그랗게 모여 옆으로 쏠린 모양새가 여간 웃긴 게 아니라 야 얘 좀 집어넣어 봐, 손가락 들어 툭툭 쳤다. 어유 진짜, 하면서도 냉큼 입술을 원래대로 돌린다. 아, 순간 물음 하나가 생각나 조금 더 톤을 깔아 조용히 물었다.
“코노하, 너는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아냐.”
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양 해괴한 표정을 짓는다. 아, 아니. 내가 아니고 쿠로오가 한 말이거든? 쭉 뻗은 손가락을 따라 앞서 걷는 벌건 등 쪽으로 시선 돌렸다 다시 보쿠토를 바라본 코노하가 인정! 쟤는 그런 말 할 수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는 사랑이 뭔지 아냐고... 아카아시는 모른다 할 게 분명해. 위아래로 두어 번 살랑살랑 움직이는 금색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막 감았는지 샴푸 냄새가 난다. 그건 그래~ 나도 모르겠는데. 그런데 내 짝이 그러는데, 내 짝 여자애거든? 그런데 걔가 그렇게 책을 좋아하거든, 특히 네임 세대 이전 시기 책을. 보통 사랑을 얘기한다더라, 엄청 불 같이 뜨겁고 가슴 조이는 감정 같대. 자기도 직접 느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러긴 했지만... 금색 머리칼을 헤치는 손을 보다 푹 고개를 숙인 귓가로 왜, 불안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혹시 쟤가 사랑 얘기를 하든? 그런 책 마니아래? 보쿠토는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야, 보쿠토! 코노하! 거기 서서 뭐하냐! 빨리 안 와? 외치는 선배들 목소리를 듣고 서둘러 걸음을 떼면서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자기한테 사랑을 주면 내 운명이 돼주겠대, 이게 말이 되냐. 곧이어 들려온 하? 는 평소보다 톤이 조금 높았다. 너도 이해 안 되지, 나도 안 돼. 빨간 유니폼이 확 뒤 돌아 걸어온다. 멀리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왠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야, 코노하. 손 좀 떼 봐, 조용히 일렀다. 어, 미안. 마치 처음부터 이랬다는 양 얼른 바지 양쪽에 손을 넣는다. 얘기는 잘 됐습니다, 보쿠토 군~ 코노하 안녕? 한쪽 눈을 반쯤 가린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 지나가는 방향 쫓아 흔들렸다. 어, 안녕 쿠로오. 코노하는 쿠로오를 싫어하지 않았다. 보쿠토 네 운명 말인데 은근 좋은 사람 같아, 라 한 적도 있었다. 네코마는 저쪽으로 갔어, 저기. 손가락을 흔들어 방향을 가르쳐준 코노하에게 땡큐, 이따 봐! 보쿠토도 이따 봐! 예의 그 친절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얼른 뛰어가는 그 뒷모습을 물끄럼 응시하다 역시 속 모르겠다 말야, 머리를 쥐었다. 음, 원래 저런 타입이 좀 알기 힘들지. 으쓱, 어깨가 내렸다 올랐다. 좀 수준이 아니야, 좀 수준이. 어깨를 안은 손이 턱턱 움직인다. 짐승 같은 감을 가진 너한테도 그 정도라니 쟤 진짜 엄청 철벽인가보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애잔함이 가득 깃들었다. 아씨 됐어, 이제 더 이상 동정은 받지 않겠어! 쟁취한다 쿠로오! 낄낄, 바로 옆에서 터진 웃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사랑 얘기를 하는 애라며? 그럼 좀 힘들지 않을까, 백년지대계를 세워 봐. 이제는 거의 반쯤 헐떡이는 친구를 잠시 째려본 보쿠토는 좀 더 걸음을 빠르게 했다. 잘 모르겠다니까, 사랑이 뭔지 모르겠는데 하라 그러니까. 사랑을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 걸까? 막 라임처럼 변하고 그러나? 코노하가 글쎄, 고개를 기울인다. 내 짝 말로는 그냥 가슴이 답답해지고 그렇다던데? 물론 그 소설 주인공들 얘기입니다, 거기 주인공들은 막 답답해하고 그랬다더라. 설레하고? 우리 배구 이겼을 때 감각이랑 비슷하려나... 나도 잘 모르겠네, 난 그런 책들 읽어본 적이 없어서. 막 온몸을 다 내던지고 싶어지고 그 사람이 너무 소중해지고 그렇대, 두루뭉술하지? 그런데 그렇다더라, 되게 추상적인 감정 같아. 엄청 절박하지 않을까? 걔한테서 책이라도 빌려다줘? 누가 읽는다 그럼 좋아할걸, 제법 수긍은 갔다. 제 운명이 아닌 사람을 잊지 못해 죽어가던 사람들은 모두 매우 절박해 보였었다. 사랑해, 그 말이 얼마나 이해가 되지 않았던가. 흙먼지만 날리는 바닥을 바라보다 빨리 오랬지 보쿠토, 코노하! 분노하기 일보직전까지 다다른 목소리를 듣고서야 네, 죄송합니다! 바삐 뛰었다. 절박함이라, 달려가는 도중 이제는 아대를 끼지 않는 제 왼 손목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선명했다.
합숙 첫날은 아주 지옥 같았다. 체력으로는 어디서 밀리지 않는 보쿠토조차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서는 한참 숨을 헐떡여야 했으니 얼마나 빡빡했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저는 좀 더 연습할래요, 한 보쿠토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모두 휴식을 선언했다. 저녁이나 먹어, 인마. 충분한 휴식도 중요해, 너무 무리해서는 안 돼. 보쿠토 너는 우리 미래 전력이기도 하다고, 식당 밤 11시까지 하니까 꼭 밥 먹어라. 머리 슥슥 쓰다듬어주고 걸어가는 선배를 보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쿠로오가 있었다. 쿠로오! 나른한 얼굴이 씩 웃는다. 송곳니는 여전히 뾰족하다. 이제 보니까 길다기 보다는 뾰족하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보쿠토는 활짝 웃었다. 저녁 먹으러 가? 같이 가? 꼬리라도 흔들 마냥 다가온 보쿠토의 어깨를 확 끌어당겨 어깨동무한 쿠로오가 아직 안 먹습니다, 체력이 남아서 말이지~ 조금 더 연습할까 싶은데 같이 연습할래? 웃는 얼굴로 물었다.
“대박, 나 연습하려 했는데. 역시 우리 운명인가 봐, 이렇게 통하고.”
“통했다기보단 내가 네 말을 들었지? 너 더 연습 한다 그랬잖아.”
여기 체육관 다 쩌렁쩌렁 울리게, 양팔을 활짝 펴 보이는 쿠로오에게 시끄러, 시뻘겋게 단 말 하나 던지고는 민망함을 숨기기 위해 얼른 공을 주워들었다. 야, 나 스파이크 잘 치지 않냐. 중학교 시절보다 더 나아졌지? 어떻게 생각하냐? 쿠로오가 하품했다. 음~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 오늘 위력 좋긴 하더라. 아주 쾅쾅 잘 박히던데? 공 올려줄까? 거절할 이유가 없어 그래! 올려 줘! 외쳤다. 읏차, 세터가 아니라 그런지 섬세한 컨트롤은 조금 부족했지만 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쾅, 무지막지한 소리가 울리자 박수가 터졌다. 저기 사람 있었으면 머리 터졌다.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갑자기 상상이 돼 구역질이 나 너 그런 말 안 할 수 없냐, 하니 사실이잖아? 또 굴러다니는 공 하나를 주워온다. 그런데 너 가운데는 잘 못 뚫지? 보니까 계속 비스듬히만 치던데 그거 네 약점이라 불리는 거 알아?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알아, 중학교 때 아카아시가 말해줬어. 나 약점이 스물여덟가지나 된대. 순간 옆에서 난 공 터지는 소리가 사실 사람 웃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스물여덟! 인간이냐! 너 에이스 맞냐! 그걸 말해주는 아카아시 군이라는 사람도 대단하네! 거의 바닥까지 칠 모양새로 허리 굽혀 웃는 쿠로오를 보다 그래도 잘만 이겼다! 나 완전 세거든! 마주 허리를 숙였다. 찰나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마침내 그가 웃는다. 천천히 휜 눈매가 연갈색 작은 눈동자를 반쯤 가린다.
“넌 강하지.”
체육관 문은 닫혀 있었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안에는 둘뿐이었다. 보쿠토는 그 젖은 어깨를 잡았다 놓았다. 거둔 손을 공으로 뻗었다간 다시 잡아들였다. 엇부딪히는 시선을 셔터 치듯 잘랐다. 싹둑, 싹둑, 잘려나간 시선이 발밑 그득 고인다. 아, 어릴 적 재미있게 본 영화 속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아, 소리를 내며, 여주인공에게 금을 건네줬던 그 괴물. 어쩐지 그 괴물의 심정을 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검은 티셔츠는 그 어깨에 달라붙어 있다. 공을 주웠다. 떨어뜨렸다. 다시 주웠다. 미끄러졌다. 체육관 문을 봤다. 닫혀있다. 눈을 돌렸다. 매니저들도, 다른 선수들도 없다. 쌓여있는 공 더미를 봤다. 다시 공이나 주웠다. 네트를 봤다. 너머에도 사람이 없다.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없었다. 앞을 봤다. 쿠로오가 있다.
순간 보쿠토는 그 몸을 끌어안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견디기가 힘들다, 헐떡헐떡 막혀오는 숨을 간신히 삼켜 내리고는 그냥 그 등을 꽉 끌어안은 채 겨우 호흡했다. 쿠로오와 숨을 맞추려 노력했지만 지금 제 숨이 너무 빨라 잘 되지 않았다. 쿠로오, 그 이름은 끝이 없었다. 걸리는 부분도 없었다. 자꾸 빠져나가는 이름을 잡으려 쿠로오, 쿠로오, 계속해서 되뇌자 응, 짧은 답이 돌아왔다. 여기 있어. 그 글쎄,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쿠로오, 발 밑 그득 고인 시선 새로 이름이 녹아든다. 넓은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쿠로오, 다시 이름을 불렀다. 응, 여전히 그 대답만이 돌아온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 상대의 손을 잡았다. 막 운동을 해서인지 아직 뜨거운 데다 땀이 배어 축축하기까지 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붙잡기만 했다. 쿠로오, 이름이 모래처럼 흘러나간다. 모래를 안은 기분이었다, 어쩜 공기인지도 몰랐다. 손목 둘러 새겨진 이름과 날개 뼈가 부딪혔다. 식간 온몸이 뜨거워져 급히 숨을 뱉은 보쿠토를 잡히지 않은 쪽 손이 끌어안았다.
응.
보쿠토는 결국 깊은 호흡을 토했다. 네임 세대 전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떤 말을 했을까, 너는 내 운명이야? 결혼해줘? 네가 좋아? 너는 특별해? 너야말로 내 사람이야? 너는 내 거야? 풀 수도 없을 만치 엉망진창 엉킨 머리는 외마디 비명 같은 한 마디 말을 뱉어내고는 숨을 거뒀다.
“사랑해....”
반쯤은 울음이었다. 이 감정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어 두 번은 말하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정의조차 모르는 감정을 또 뱉기는 무서워 그저 숨만 더듬었다. 젠장, 젠장... 쿠로오. 저보다 조금 높은 곳을 차지한 어깨가 조금 기울었다.
그래.
젖은 손이 제 이름 새겨진 손목을 쥐었다. 그래, 보쿠토. 보쿠토는 대답 않은 채 그저 그 몸을 껴안고만 있었다. 이제 우리 사귀는 거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온도가 조금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연습은 그만할까, 보쿠토. 쿠로오가 그리 말했다.
씻고 누워서도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운명을 맞교환한 사람들은 이 중에서는 둘뿐이 없어 그 방은 오롯이 둘 차지가 됐다. 다른 방에서 떠들다 어느 팀 감독에게 좀 잠 좀 자라며 호되게 혼나는 소리가 들렸으나 쿠로오는 물론이고 보쿠토조차도 웃지 않았다. 날이 좀 더워진 것 같지, 그 말에야 겨우 적막이 찢겼다. 응, 더워졌다. 너 웃통 까고 자도 돼, 안 놀릴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불을 더 덮어쓰는 게 느껴졌다. 너한테 무슨 짓 안 하고 나 원래 윗옷 안 벗거든, 투덜거리자 흘긋 시선이 돈다.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분간될 만치 짙었다. 끝이 처진 눈매임에도 이상하게 끝이 날카로워 신경 쓰게 된다. 이불 밖으로 내놓은 팔이 어쩐지 시려 팔짱을 끼니 너 집에서 그러고 자냐, 웃음이 흐른다. 한참 뒤척이기만 하던 쿠로오가 등 돌린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사랑 모르겠지.”
말없이 그 등 쪽으로 몸 돌려 바라보았다. 역시 잘 모르겠지, 너도. 모르지만 분명 뜨거울 테니까 느낄 수 있다 큰소리 떵떵 친 사람은 어디 가고 모든 걸 헷갈려하는 사람만이 남았다. 보쿠토는 벌겋게 부은 제 손을 보다 무책임하네 쿠로오, 했다. 넌 알 수 있다며. 검은 등이 잘게 떨렸다. 웃는지 우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럴 줄 알았는데, 숨이 길었다.
모르겠네.
숨이 길었다. 숨 사이사이 섞여 들어간 말이 작게 웃는다. 모르겠다. 우리 엄마랑 아빠는 나한테 맨날 사랑한다 했었는데, 그래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쿠로오가 다시 등을 돌려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네 감정이 그거보다 더 온도가 높아, 그래서 모르겠어. 그 사랑과 이 사랑은 다른 걸까? 똑바로 누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운 쿠로오에게 손을 뻗었다.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말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된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제 감정조차도 구분하지 못한다. 저도 마찬가지다, 확답을 줄 수 없어 그저 손 뻗은 채 누웠는 보쿠토의 손 위로 뜨뜻한 느낌이 와 닿았다. 아,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아득하게 먼 검은 시선은 여전히 천장만 보고 있다. 너와 난 운명인 걸까? 참지 못한 말은 경주마처럼 내달린다. 쿠로오가 희미하게 웃는다. 그렇다기에는 나 아직 네 이름도 없고. 너도 봤잖아? 매끈하기만 한 목이 소리 따라 움직이다 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으니까 한 번 해보자.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손가락이 마디마디 얽힌다. 어디까지든 가보자, 보쿠토. 보쿠토는 응,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왁자지껄한 애들 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다들 잠든 모양이다,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그 후 둘은 공식 연인이 됐다. 보쿠토가 쿠로오 이름을 가졌다는 게 알려진 순간부터 사실 반쯤은 그런 취급이었지만 이제는 누군가 너희 둘 사귀냐, 운명이냐 물어봐도 쿠로오가 부정하지 않는 그런 사이가 됐다. 활기찬 보쿠토와 적당히 가라앉은 쿠로오는 정말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다들 정말 운명이 사람을 보면서 짝을 정해주긴 하나봐, 쟤네 둘 진짜 죽 잘 맞잖아. 부러울 정도라니까? 고개 끄덕일 정도였다. 둘은 주말마다 영화를 보거나 놀이공원 같은 데 가서 논 다음 배구를 했다. 가끔은 서로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쿠로오 어머니는 과연 좋은 사람이었다. 어서 와, 테츠로 이름을 가진 애라고? 어머, 훤칠하게 잘생겼네. 다만 지나치게 운명을 믿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듣다보니까 왜 쿠로오가 운명이라면 질색을 했는지 알 듯도 한 기분이 들었다. 말끝마다 너는 테츠로 운명이니까, 나도 진짜 운명을 알고 싶었는데, 같은 말을 덧붙이니 어떻게 노이로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쿠로오는 반쯤 해탈한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늘어놓는 운명론을 적당히 들어주는 척하며 바로 다른 쪽 귀 열어 흘려보내는 게 보여 진짜 쿠로오 테츠로 대단하다, 저도 몰래 조용히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듣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거슬리지 않을 만치 반주를 넣어주기까지 했다. 와, 진짜 정말 대단하다. 난 우리 엄마한테도 저렇게 못해주는데, 왜 쿠로오가 네코마의 상담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는지 몸소 느꼈다. 저런 어머니를 둔 이상 인내심이 늘 뿐이 없잖아...! 여느 네임 2세대들이 그렇듯이 운명론자기는 해도 신봉하지는 않는 보쿠토로서는 쿠로오 어머니가 잘 이해가지 않았다. 사랑은 다 부질없어, 쿠로오 어머니는 그리 말했다. 다 부질없어, 그냥 운명을 만나 사는 쪽이 좋단다 테츠로야. 넌 다행히 운명을 만났으니까, 게다가 이렇게 잘생긴 청년이고. 마침내 쿠로오가 웃는 얼굴로 자리를 털었다.
“엄마, 나 이제 내 방 갈게.”
그래라, 엄마가 너무 오래 잡았지? 간식 갖다 줄게, 같이 일어선 어머니를 아니야, 괜찮아. 내가 적당히 주스 가져갈게~ 앉힌 쿠로오는 여느 때와 같이 웃는 낯이었으나 어쩐지 보쿠토는 그 표정이 제일 무서웠다. 벽 같았다, 아무도 저 웃는 낯을 망가뜨리지는 못했다. 뒤돌아서 냉장고로 향한 쿠로오를 보다 고개 돌린 어머니가 우리 테츠로 잘 부탁해요, 인사했다. 아, 아니요. 저야말로, 절하듯 허리 숙여 답하고는 그를 따라 일어났다. 쿠로오, 내가 들까? 무거워 보이는데? 쿠로오가 웃었다. 방금 전보단 조금 허물어진 웃음이다. 송곳니가 완전히 드러났다. 됐습니다, 저도 배구부거든요. 이 정도는 들 줄 알거든요, 어디서 까부냐는 양 턱 한 번 들어 위협하듯 웃고 어느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아마 저 방인가보지, 얼른 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책상을 마주한 채 서있던 등이 아, 미안. 우리 엄마가 좀 운명을 많이 믿으셔, 언젠가 말했었지? 우리 아빠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엄마는 거의 늘 집에만 있으시다 보니까... 부드러이 돌았다. 여유 하나 없이 애매하게 웃는 얼굴이 안쓰러워 괜찮아, 주스 좀 마실래? 마치 제가 방주인인 양 주스를 따라 내미니 또 송곳니를 드러낸다. 자식, 이제 눈치가 좀 늘었어. 냉큼 받아 마시고는 주저앉듯 앉는다. 사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게 알고 싶었어, 우리 엄마는 원래 운명론자가 아니셨댔거든. 인간 삶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라 생각하셨대, 그런데 사랑이 저렇게 사람을 바꿔놓은 거지. 그 극단적인 감정을 느껴보길 원했어, 쿠로오는 딱 거기까지만 얘기했다. 뭐든 끝을 얘기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얘기한 끝은 단 하나였다. 네가 내게 사랑을 주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떠나 운명이 아닌 사람과 사귈 거야, 그럼 불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차라리 노네임인 편도 좋겠군, 보쿠토는 그와 사귀고서도 그 말을 잊지 못했다. 내 감정이 사랑이 맞긴 한 걸까 계속 고민했다. 사과주스 담긴 컵을 만지작거리는 긴 손가락을 보다 그렇구나, 고개를 숙였다. 그렇구나, 그래서... 영혼 없는 말을 금방 눈치 채는 쿠로오는 이번에도 웃었다. 공감 안 되는 건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해, 보쿠토. 절대 화 안 내. 너희 부모님은 이런 결혼 안 하셨댔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모르지, 모든 일에 다 공감할 수는 없어. 그리고 너 진짜 거짓말 못한다니까? 사과주스 뚜껑을 잡은 채 애매하게 웃었다. 하지만 쿠로오, 너는 사랑을 못 받으면 떠난댔잖아. 사랑은 공감하는 거랬는데, 그 말은 억지로 삼켜 내렸다. 알았어, 그 말만 했다.
처음 쿠로오를 제 집에 데려간 날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보쿠토 부모님은 처음에는 쿠로오를 조금 어색해했지만 곧 그 싹싹함과 다정함에 감화돼 코타로가 운명 한 번 잘 만났다는 말까지 해줬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원래가 연장자에게 대거리하는 성격이 못 되는 쿠로오는 그런 칭찬을 들을 적마다 고맙다는 말만 했다. 그를 알아 기쁘지 않았다, 입 내민 채 앉아있는 보쿠토의 어깨를 감싸 안은 쿠로오가 왜 그러냐, 조용히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쿠로오는 되묻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도 둘은 꼬박 3학년이 될 때까지 제법 즐겁게 연애했다.
문제는 최근이다. 보쿠토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을 바라보다 입술을 씹었다. 도통 그 빌어먹을 이름이 나타나질 않았다, 목덜미에도 손목에도 발목에도 새겨지지 않았다. 여전히 티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쿠로오는 노네임일지도? 그래도 너한테는 내 이름 있으니까, 참 태평하게 말했으나 보쿠토는 그저 초조했다. 노네임이라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만약 저만 이름을 가졌을 경우 분명 쿠로오는 그 이름 좋은 사랑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버릴 텐데 그 꼴을 볼 수는 없었다. 미안, 보쿠토. 역시 너만 내가 운명인가봐, 나는 운명이 없나보네. 잘 있어, 떠나가는 쿠로오를 상상하는 순간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벌써 3년이다, 제 손목을 두른 이름은 사라지기는커녕 더 짙어지기만 했다. 그런데 쿠로오는 아니라는 거야, 며칠 전 잡은 그 손목이 생각났다. 강단 있지만 말라 꽉 잡으면 마디가 조금 남던 그 손목을 떠올리자 다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선생 목소리 따위는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꼭 한 달이 남았다, 만약 그 사이에도 이름이 들지 않는다면... 가슴이 아주 턱턱 막혀 샤프를 부러져라 쥐었다. 불안한지 흘끔거리는 짝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제발, 진짜 쿠로오. 제발 좀... 아카아시나 코노하, 와시오는 다 괜찮을 테니 걱정 말라 했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이번 10만 명 째는 쿠로오 테츠로일 수도 있다, 그 날것을 운명이 정말 들 고양이 그 자체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속이 들들 끓어 그냥 샤프를 내려놓은 채 선생님을 불렀다. 왜 그러나, 보쿠토 코타로 학생? 보쿠토는 다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양호실 가고 싶어요, 속이 좋지 않습니다. 워낙 활발한 데다 농땡이 피우는 법이 없는 보쿠토인지라 선생도 그 말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많이 아픈가보군, 다녀오게. 보쿠토는 허리 숙여 꾸벅 인사하고는 문 열어 나가 양호실까지 갔다. 걸음마다 막 새어나오는 욕을 꾹 참았다. 씨발, 쿠로오. 어떻게 이름이 계속 안 뜰 수가 있어? 요즘 따라 더 뜨끈뜨끈해진 손목에는 거의 늘 쿨팩이 붙어 있다. 코노하는 와, 보쿠토 너 손목 엄청 건강해지겠는데! 앞으로 천 년 간 관절염 안 걸리겠다, 농담했으나 그를 받아쳐줄 여유조차 없었다. 문을 열자 양호선생이 보였다. 어라, 보쿠토 군 아니야? 무슨 일이니? 최대한 힘없이 말했다.
“속이 좀 아파요. 약은 괜찮고 조금 누워있기만 하다 갈게요...”
그 보쿠토 코타로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양호선생은 제법 놀란 표정으로 휴식실 커튼을 걷어주었다. 어서 누우렴, 보쿠토 군. 많이 아파? 어디가 아픈데? 보쿠토는 온힘을 다해 아픈 척하며 그냥 속이요, 체했나 봐요. 가끔 있는 일이니까 좀 누워 있을게요, 눈을 감았다. 더 할 말이 없는지 그냥 커튼 쳐주고 가는 양호 선생을 실눈 떠 바라보다 다시 완전히 눈을 감았다. 아, 젠장 쿠로오.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문자라도 해볼까, 핸드폰을 몰래 꺼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봄고가 끝나고 보쿠토와 쿠로오는 자주 만나 밥을 먹었다. 너 졸업하고서 뭐할 거야? 물은 쿠로오에게 글쎄, 아버지 회사 물려받을 지도. 나 적당히 성적 괜찮으니까 그냥 다른 회사 갈 지도 모르고. 너는? 되물었었다. 문 포크를 뺄 생각도 않은 채 쿠로오는 무심히 대답했다.
역시 여행이려나.
그냥 아무데나 가보고 싶은데. 뭐 브라질이라거나, 가서 축제 같은 거 좀 보고. 스페인도 좋지, 거기 건축물이 예쁘대. 아, 가까운 중국도 좋겠다. 만리장성이 그렇게 멋있다며? 보쿠토는 저도 모르게 식탁을 꽉 잡았다. 나도 같이 가? 청량한 웃음이 터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네가 왜 가?
그 날 보쿠토는 완전히 기분이 상해 돌아왔다. 초조해서 죽을 것 같았다, 졸업하자마자 저 없이 여행 갈 생각이나 하는 쿠로오가 싫은데 밉지 않아 밤새 울었다. 그 손목과 목이 티 없이 말끔했기에 더 그랬다. 진짜 나쁜 놈이야, 나쁜 놈. 진짜 너무 나빠, 그렇게 울다 등교해도 재밌는 일은 없었다. 주장이 된 아카아시는 배구부 은퇴식을 하고서도 뺀질나게 체육관 출입을 하는 전 주장를 매정하게 쫓아냈다. 이제 선배 없이 해봐야죠, 하려면 저희 연습 시합 상대나 해주세요. 물론 세터는 저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코트 들어가세요, 보쿠토 씨. 담담히 얘기하는 아카아시를 이길 방도가 없어 그냥 터덜터덜 집에나 가고는 했다.
진짜 다 너무하지 않나, 보쿠토는 파스로 가려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쿠로오 테츠로라는 이름 자가 선할 제 손목을 바라보았다. 저 복잡한 데다 굵기까지 한 획은 도통 묽어질 생각을 않았다. 너무 뜨거워 아팠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최근에는 꼭 이 이름이 처음 나타났을 적 마냥 아팠다. 쿠로오가 아파야지 왜 내가 아프냐? 보쿠토는 인상을 쓴 그대로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깨끗했던 목, 손목, 발목, 그리고 허리...
거기에 내 이름이 새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갑자기 덜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대로 성인이 돼버린다면? 노네임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영원히 떠돌이가 돼버릴지도 모른다. 역시 나 노네임이었네, 여행이나 가야겠다. 잘 있어, 보쿠토! 손 흔드는 쿠로오를 생각하자 머리가 손목만큼이나 뜨거워졌다. 그냥 보내야할까? 그럴 수는 없다, 입술을 꽉 깨물고 억지로 눈을 감았으나 곧 다시 번쩍 뜨였다. 납치라도 해놓을까, 억지로 내 이름을 새겨줄까, 날 잊지 못하게 손목이라도 묶어놓을까, 사람이라도 붙여둘까. 평생 해본 적 없는 나쁜 상상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뒤엎는다. 사람을 붙여뒀다 도망갈 기미가 보일 경우 끌어 온다거나, 악은 악을 불러온다. 저도 모르게 이불을 꽉 쥐었다. 이름이 없어? 그럼 새겨버리지, 운명으로 만들지. 그럼 도망 못 가겠지? 내 거 해주겠지? 콱콱 몸 불려나가던 위험한 상상은 보쿠토 군, 역시 약이라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그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깨졌다. 쨍그랑, 유리 파편처럼 떨어진 상상이 정신을 찔러 피를 냈다.
“안색이 엄청 안 좋아서. 이거 약한 약이거든, 이거라도 먹어.”
아, 감사합니다... 거절할 기력도 없어 그냥 봉지를 뜯었다. 쿠로오, 나는 너를 어째야 할까. 다시 눕고서도 그 위험한 상상은 날아가지 않았다. 어쩔래, 보쿠토 코타로. 네가 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외려 송곳니 드러낸 채 웃는다. 네가 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어느새 그 검은 덩어리는 쿠로오로 화해있었다. 어쩔래, 보쿠토. 나른한 눈매가 히죽 웃는다.
네가 날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보쿠토는 화장실로 가 토해야만 했다. 모든 게 최악이었다.
만나자, 결국 그 한 마디를 보냈다. 오, 어디서? 쿠로오는 더 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3년 동안 사귀기도 했거니와 이젠 보쿠토도 쿠로오 속만큼은 다 꿰뚫어서다. 쿠로오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잘 분간해내고는 했다. 너도 거짓말하지 마, 그리 말한 보쿠토에게 진짜 날카롭다니까, 쿠로오는 고개 살짝 저어보였었다. 보통 아니야, 보쿠토 코타로 군. 잘 컸습니다~? 그 말 한 입술은 무척 예뻤었다.
객관적으로 예쁘지 않은 사람이 예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역시 사랑일까? 어떻게 봐도 쿠로오 테츠로는 제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대 같이 큰 키와 정리하지 않아 늘 삐쳐 있는 머리카락, 희지도 까맣지도 않은 피부, 털털함을 넘어 가벼운 말투에다 사나운 눈매까지 어디 하나 이상형과 부합하는 데가 없었다. 굳이 매치시키자면 긴 목과 긴 손가락, 상냥함 정도인데 그 상냥함조차도 상대한테 맞춰주는 쪽에 가까워서 조금 애매했다. 누군가는 아예 양아치 워너비라 한 쿠로오 테츠로를 대관절 왜 예쁘다 생각한단 말인가, 문자를 내려다보다 어디가 좋아? 짧게 답했다. 사실 만나는 곳은 늘 체육관 아님 쿠로오 집 주변 공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뭐, 그리고 답은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 집 주변 공원? 이번엔 내가 너희 집 갈까? 상관없어.
상관없다는 말보다는 좋다는 말 쪽이 더 좋은데, 생각하다간 그냥 아니야 됐어, 내가 갈게. 몇 시가 좋아? 답했다. 조금 생각했는지 답장은 조금 늦었다. 아무 때나 괜찮아, 너 편한 시간대로 하자. 이번에는 보쿠토 쪽이 생각했다. 언제가 좋나, 생각 끝 문자를 달았다. 5시? 어때? 너무 이른가? 그럼 말해줘! 쿠로오는 그래, 흔쾌히도 수락했다. 그럼 그때 봐, 보쿠토. 수업 열심히 들어라. 그 나른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젠장, 어쩌냐 이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모든 게 대단히 엉망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버스를 탔다. 배구부를 안 하니 시간이 너무 넘쳤다. 이제는 합숙도 없고 공치는 시간도 없고 땀 냄새도 안 맡아도 되고... 이 모든 게 싫다 할 사람들도 많았으나 보쿠토에게는 다 추억이었다. 좋았는데, 여전히 땀 흘리고 있을 아카아시가 부러웠으나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거칠 일이다, 지금 주장인 아카아시 케이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졸업해 대학생이 될 터였다. 대학 가서는 배구할지 모르겠어요, 보쿠토 씨는 하실 겁니까? 그리 물은 아카아시는 담담한 낯이었다.
글쎄, 안 할지도 모르겠어.
선배한테 좋은 오더 꽤 많이 들어왔다 들었는데요, 정보통인 아카아시는 이런 때에도 확실했다. 그렇긴 한데 대학 때는 공부해야하지 않을까? 더 운동할 시간이 있을지. 게다가 난 프로 지망도 아니고 말야, 나 들어가면 결국 한 사람은 자리를 뺏긴단 거잖아. 그러기는 싫어, 어느 누구한테는 재미가 아니라 정말 목숨 달린 자리일 텐데. 고등학교 적에야 다들 재미가 더 크지만 대학은 실업리그와 곧장 연결된 곳이잖아, 하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냉정한 답이 돌아왔다. 다 실력이지요, 대학 리그 주전이 못 된 사람은 실업팀도 당연히 못 갑니다. 간다 하더라도 벤치나 지키다 은퇴하겠죠, 재미로 해도 상관없다 생각합니다. 다 자기 능력인 걸요, 아카아시는 그리 말하며 제 손가락 하나마다 테이핑을 정성껏 했다. 그 모습이 꼭 고요한 밤 같아 아카아시도 정말 대단한 애지, 생각했었다. 날카롭고 여리게 생겼어도 묵직해 코트 한 켠을 확실히 책임져주는 애였다. 그러니까 주장을 맡긴 거고, 보쿠토는 옆을 바라보았다. 네코마 차기 주장은 코즈메 켄마가 됐댔다. 쿠로오는 그 소식을 전하면서 차기 에이스인 하이바 리에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켄마 뿐인데다 생각보다 책임감도 꽤 있어서 시켰다 그랬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랐다. 분명 켄마가 계속 배구를 하길 바라서 그랬을 것이다, 보쿠토는 잠시 주먹을 쥐었다. 코즈메를 생각하는 만큼만 날 생각해주지, 문득 든 생각을 겨우 고개 흔들어 털어내고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 역할을 못하게 된 파스를 떼어 가방 깊숙이 쑤셔 넣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검은 이름이 보인다, 보쿠토는 그 손목을 끌어안듯 당겨 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네 이름은 언제에나 나타날까.
열심히 공원까지 걸어가니 쿠로오가 있었다. 이쪽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왔는지 단정한 교복 차림이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넥타이며 조끼를 보다 쿠로오! 손 흔들어 크게 부르자 금세 웃는 얼굴로 돌아본다. 많이 기다렸어? 달려온 보쿠토의 머리를 쓰다듬은 쿠로오가 그다지요~? 씩 웃었다. 송곳니는 3년이 지나도 여전히 날카롭다, 별 일 없었으니만큼 무뎌지는 쪽이 더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아직 날 어두워지는 속도가 빨라서인지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회사원들이나 양아치들이 오기에는 일러 지금 공원에는 둘과 비둘기들뿐이 없었다. 오느라 힘들었지? 뭐 사줄까? 목마르지 않아? 나 알바 비 탔는데, 보쿠토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 마르면 마시고. 쿠로오가 웃는다. 나도 지금은 딱히. 곧이어 정적이었다. 졸업 얘기가 나오고서는 줄곧 이런 상태다. 말이 도통 이어지질 않는다, 다리를 꼰 보쿠토를 보던 입술 사이서 너는 대학 어디 갈 거야? 상냥함이 흘렀다. 글쎄, 눈을 껌벅여 티끌을 흘려냈다.
“역시 고등학교랑 이어진 데 가려나... 절차도 다 밟았고.”
하긴 너희 학교 명문이지, 별 의미 없이 말하고는 또 턱을 괸다. 턱 괴지 마, 자세 나빠져. 그런 건 싫잖아? 만류하자 또 킥킥 웃는다. 진짜 묘하게 올곧아, 너는. 졸업이 한 달이나 남았건만 쿠로오에게서는 벌써부터 어른 냄새가 난다. 급작스레 불안해져 너는 어느 학교 갈 건데, 쿠로오? 그 팔을 붙잡았다. 글쎄, 또 그 대답이다. 한동안 없었던 글쎄, 가 최근 들어 또 생겼다. 잘 모르겠어, 가기는 가야할 텐데. 집에서도 원하고, 긴 손가락이 벤치를 툭툭 친다. 와이셔츠 아래로 드러난 단단한 손목은 한 치 티 없이 매끈하기만 하다. 그래도 나 아주 공부 못하지는 않았으니까 가긴 하겠지, 웃는 목소리가 나른하다. 반쯤 감겨 앞을 응시하는 눈동자를 보다 나랑은 계속 있을 거지, 쿠로오? 불안하게 물었다.
“나 이름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그래서, 짧게 따졌다. 나한테 네 이름 있잖아, 네 운명은 아니어도 적어도 내 운명이긴 하다는 거잖아. 있어줄 수 없어? 아니지, 오히려 내가 네 운명 아냐? 너만 나한테 이름 줬잖아, 그럼 내가 네 운명인 거지! 나한테 멋대로 네 운명을 맡겨놓고 혼자 가버리려는 거야? 쿠로오는 제 왼 손목을 만질 뿐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손등 위로 도드라졌다 사라졌다 하는 손등 뼈를 따라 눈길을 옮기다간 결국 그 얼굴을 다시 바라본 보쿠토가 역시 이걸로는 부족해? 입술을 깨물었다. 사랑을 못 느꼈어? 더 뜨거워지지가 않아?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 계속 표현했잖아. 네가 있어줬음 좋겠다고, 뭐가 문제인 거야. 내가 사랑을 몰라서 그래? 맞아, 나 몰라. 그 세대가 아니니까! 우리 부모님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고, 사랑으로 생긴 자식인 너조차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나 진짜 너를 좋아한다고, 네가 없는 거 싫어! 그냥, 그냥 네가 없는 건 싫고, 너 없는 거 생각하니까 가슴이 아프고 그래! 이게 사랑일까? 잘 모르겠어, 너 혼자 여행간다 그랬을 때 내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아? 대답해 봐, 쿠로오! 쿠로오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 지금까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거 보면 노네임일 수도 있어. 노네임과 결혼해봐야 특혜가 생기진 않아, 보쿠토. 보쿠토가 쾅, 벤치를 내리쳤다.
“아니, 상관없다니까! 특혜가 생기든 말든 알 바가 아니라고, 나는 그냥 너랑 있고 싶어! 네가 없는 건 싫어, 그게 다야. 네가 없는 게 싫고 그냥 나랑 있어줬으면 좋겠어...! 왜 여행은 혼자 가려 그래? 나랑 같이 가! 내가, 내가 그 이상 뭐 바란 적 있었어? 아니지, 바란 적은 있었어. 너한테도 내 이름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엄청 바랐지! 그럼 네가 켄마보다 내 생각을 더 해줬을까? 네코마보다 나를 더 챙겼을까? 그런 생각 엄청 많이 했어! 다른 생각도 했지, 네가 알면 기겁할 생각들도 엄청 많이 했어! 그런데 나 참았다고, 나 진짜 열심히 참았어. 사랑이 뭘까? 배려하는 거? 찾아보니까 다들 배려하고 공감해주는 거라대, 그래서 그렇게 했어. 그런데 넌 자꾸 나 떠나겠다고만 하고, 노네임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이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을 주면 뭐든 해준댔지. 그럼 이건 사랑이 아닌 거야? 난 몰라, 잘 몰라. 그런데 네가 나랑 있어줬음 좋겠어, 억지로라도 붙잡아두고 싶은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잖아, 그렇다잖아.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 난 특혜 따위 상관없어, 어차피 너 아닌 다른 사람과 살아도 불행이고 혼자 살아도 네가 없어서 불행할 거야, 그냥 너랑 살고 싶다고! 왜 몰라줘? 이게 사랑이 아니라서? 하지만 나 늘 너만 생각하는데, 너는 모르겠어? 그럼 난 더 모르지, 어떻게 해야 해? 사랑이 뭔데, 좀 알려주라 쿠로오. 좀 알려줘, 나 3년 동안 계속 방황했잖아, 그런데 넌 다 아니라잖아. 이제 사랑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어? 배려하고 공감하고 위하는데 넌 아니라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이것마저도 사랑이 아니야? 나는, 나는. 나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쿠로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 좀 해봐. 차마 상대를 끌어안지는 못해 제 몸만 끌어안은 채 엉엉 우는 보쿠토 위로 보쿠토, 짤막한 말이 쏟아져 내렸다. 보쿠토, 보쿠토. 잠시만. 나 봐봐. 그 목소리는 미지근하나 강하다. 평소 같은 대거리조차 못하고 겨우 고개만 든 보쿠토의 얼굴을 감싸고 시선을 맞춘 쿠로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키스해줄래.”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그 얼굴만 바라보다 눈물도 닦지 못한 손을 뻗어 그 몸을 끌어안고는 겨우 입을 맞췄다. 부드러웠다, 약간 커피우유 맛이 나는 것도 같았다. 울음 때문인지 자꾸 숨이 막혀 몇 번이나 입술을 뗐다 붙였다 하니 푸스스, 웃음이 흘렀다. 너 정말 키스 못하는 구나, 저도 해본 적 없을 터면서 그리 말한다. 키스라기보다는 입맞춤과 가까운 일이었다. 그 어깨에 잔뜩 눈물 젖은 얼굴을 묻었다. 안은 팔 가득 힘을 주자 좀 아픈데, 하면서도 밀어내지는 않는다. 마른 허리가 바듯했다. 있잖아 쿠로오, 목이 메어 자꾸 말이 뚝뚝 끊겼다. 응, 쿠로오가 하는 대답은 늘 끝 없이 참 가볍게도 끝난다. 안 가면 안 돼? 가지 말고, 나랑 있어줄 수는 없어? 여행도 같이 가고, 그럴 수는 없는 거야? 내가 하는 건 정말 사랑이 아니야? 쿠로오 너희 부모님은 이렇지 않았어? 미동도 보이지 않는 몸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심장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게 최선이야, 나는 네가 너무 좋아. 좋다 못해 죽을 것 같아, 그런데, 그런데 네게는 이게 사랑이 아니야? 하지만 쿠로오, 지금 나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고장 난 가로등마냥 소리가 끊겨 더듬했다.
“사랑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어.”
좋아한다는 말로는 부를 수 없어, 그러기엔 너무 커. 죽을 것 같아, 네가 없어서는 안 돼. 운명이라서가 아니야, 그냥 네가 좋아. 문득 과거 아버지와 함께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도망쳐 숨어버린 여주인공과 그를 미친 듯이 찾던 남주인공, 사랑한다는 그 절절한 외침. 그 당시 저는 사랑이 뭐냐 물었었다, 어떻게 운명 아닌 사람을 사랑하느냐 했었다.
이제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다, 이야말로 사랑이다. 보쿠토 코타로는 쿠로오 테츠로를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 사랑해 쿠로오. 정말이야, 정말 사랑해. 쿠로오는 그저 한참 그 등을 쓸어주었을 뿐이다. 밤이 깊어 사람이 없었다, 가로등이 미약하게 떨었다.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쿠로오, 나 내일 졸업식이야. 겨우 그 말 한 마디 쓰고 엎드렸다. 그 날 이후 쿠로오와는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는 않았다. 온갖 추태란 추태는 다 부려버렸는데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쿠로오가 만나자해도 오늘은 진학 상담이 있다며 애써 무시하기를 꼭 3주, 오늘에서야 용기를 내 문자를 보냈다. 네코마는 졸업식이 언제지, 이미 했나. 네코마에서는 쿠로오하고만 친해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아카아시한테 물어볼까, 알려나? 그래도 새 주장인 코즈메하고는 연락한다 들었는데, 베개 껴안은 채 뒹굴거리는데 액정이 환해졌다. 헉, 메일. 얼른 몸 돌려 확인했다.
-이제 와 만나자는 건가~? 언제 가야하는데?
그래도 거절은 아니다, 솔직히 거절까지도 각오했었다. 만약 거절당하면 집까지 찾아가려 했다. 음, 12시 반 쯤! 우리 식이 그때 끝나! 두 번째 단추는 너 줄게. 그나저나 네코마는 졸업식 했어? 답장은 금방 왔다. 아직 안 했어. 우리는 다음 주 월요일이야. 도쿄 학교들 중에서도 제일 늦은 편. 그런데 단추는 왜 나 준대? 그 전통 아직도 있었어? 적당히 사람 잘 놀리는 그 말투를 보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거부당하지는 않았구나 싶어져 가슴이 들떴다. 그런데, 보쿠토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직 이름은 안 나타난 걸까. 졸업식이 있는 다음 주 월요일이 기한인 걸까? 노네임이어도 상관은 없지만 역시 불안하다, 이름이 뜨는 쪽이 좋은데. 운명이야말로 결혼보다 더 확실한 족쇄가 되는 세상에 사는 보쿠토로서는 쿠로오가 제 이름을 가져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 없었다. 으으, 몸을 굴리다 겨우 다시 핸드폰을 잡아 아예 전화를 걸었다. 어제부턴가 왼 손목이 너무도 뜨거운 데다 아프기까지 해 움직이기가 힘들어 오른손만 움직였다. 몇 번 통화음이 가지 않았는데 연결음이 끊겼다. 여보세요, 보쿠토?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나른하다. 쿠로오! 받아줬구나! 아예 벽을 등지고 앉아 입술을 핥았다. 그럼 받지, 누구 전화인데. 평소 하지 않던 말까지 턱턱 해주는 게 오히려 불안해 뭐 잘못 먹었어? 입술을 씹었다. 혹사당한 입술이 피를 낸다. 아닌데? 잘해줘도 난리네. 너희 학교 어디 서있을까? 너희 학교 진짜 넓잖아, 못 만날지도 모른다고? 웃음 섞인 목소리를 듣다 벚꽃나무 엄청 많은 데 있거든? 교문 근처인데 하여튼 보면 알 거야! 거기 연못하고 벚꽃나무가 같이 있어, 거기가 제일 찾기 쉽거든! 그런데 너 우리 학교 몇 번 와봤잖아? 거기로 와. 알았지? 활기차게 말했다. 쿠로오는 또 피식 웃는다. 그래, 알았어. 그리로 갈게. 더 할 말 있어? 남은 말을 머뭇머뭇 꺼냈다.
“네 졸업식 가도 돼?”
유예기간이라도 받고 싶었다, 조금 생각해볼 줄 알았건만 의외로 쿠로오는 쉽게 승낙했다. 그래, 와. 졸업식 와. 우리 학교는 크지 않으니까 나 바로 찾을 수 있을 거야. 만나서 얘기해도 되고, 보쿠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더 할 말 없지? 그럼 끊는다! 말릴 새도 없이 끊긴 전화를 보다 다시 베개를 끌어안고 누웠다. 쿠로오랑 내일 만난다, 최고 멋있게 하고 가야지. 기분이 좋아져 뒹굴거리다간 핸드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돌려 얼굴을 확인했다. 좋아, 좋아! 다 좋아! 안색 좋아지게 일찍 자야지! 쿠로오한테 멋진 모습! 얼른 일어나 씻고 와서는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말이 무색하게도 그 날 보쿠토는 밤을 꼬박 샜다. 중학교 시절부터 같이 배구를 한 친구들이 만나자마자 너 오늘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냐? 물어볼 정도였다. 아씨, 몰라! 모른다고! 이상하게 오늘따라 왁스 세팅도 잘 안 됐다. 젠장이다, 젠장.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교장이 하는 훈화를 듣고 선생님들과도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연락해라, 어차피 집안끼리도 아는 사이라 그런 말 할 것도 없건만 배구부 애들은 오래 헤어지는 기분이라도 내보자며 그리 장난스럽게 말했다. 보쿠토 씨, 졸업 축하드립니다. 아카아시도 꽃다발 하나 안겨주었다. 쿠로오 씨는요? 슬쩍 목을 빼 뒤를 둘러보는 아카아시에게 아, 지금 만나러 가기로 했어. 기다리는 중일 거야, 하니 그럼 당장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개를 기울인다. 엉, 가야지. 여태까지 고마웠다, 아카아시!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하얀 얼굴이 작게 웃었다. 저도요, 잘 부탁드립니다 보쿠토 씨. 얼른 쿠로오 씨 만나러 가보세요, 기다리시게 해서는 안 되잖습니까. 손 한 번 흔들고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내려갔다. 차 진짜 많네 오늘, 운동장 꽉 차게 세워진 차들을 세다 포기했다. 저 멀리 제법 많이 핀 벚꽃들이 보였다. 쿠로오는 저기 있을까, 사진 찍는 졸업생들과 그 가족을 피해 열심히 다리 옮기는데 머리 하나는 큰 사람이 보였다. 쿠로오! 나 여기! 쿠로오가 씩 웃었다. 보쿠토 군 오늘 멋있는데~? 안색 안 좋고 머리 세팅 잘 안 됐어? 뭐 맞았냐? 다가오는 몸은 언제나처럼 낭창하다. 그 말 하지 마, 나 진짜 엄청 신경 쓰인단 말야. 괜히 머리를 쓸어 올리니 또 웃는다. 나름 꾸미고 왔는지 셔츠며 수트가 단정했다. 너 그 수트는 뭐냐, 한 보쿠토를 향해 씩 웃어 보인 쿠로오가 이거? 엄마가 나중에 면접 보러 갈 때 입으라고 미리 맞춰주신 거, 손을 내저었다. 아 그렇구나, 4년 후 일 아냐? 나른한 얼굴이 또 웃는다. 뭐 그렇지? 4년 후까지 생각하시는 분이야, 우리 엄마가. 둘은 인적 없는 곳까지 무작정 걸었다. 마침내 가장 구석까지 와서야 사람들을 피할 수 있었다. 진짜 사람 많아. 그치? 보쿠토는 흐드러진 벚꽃을 보며 웃었다. 잠시 말이 멎었다.
“잘 지냈어?”
응, 너는?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다. 검은 이름 새겨진 제 손목만 만지던 보쿠토가 그렇구나, 나도... 주머니 깊이 손을 쑤셔 넣었다. 어쩐지 슬펐다, 시선 둘 곳이 없어 그냥 신발코만 바라보았다. 생각해봤는데. 고개가 더 떨어졌다. 이제는 들 방도조차 없게 수그려진 고개를 나 봐, 한 마디로 들어 올린 쿠로오는 평소와 조금 다른 낯이었다. 긴 손가락이 넥타이를 풀고 천천히 셔츠 목깃서부터 단추를 열어 내린다. 반쯤 감긴 눈동자는 풀어진 단추 안쪽을 본다. 그 안에는 난생 처음 보는 검은 초커가 있었다. 목을 둘러 멘 벨벳 천을 천천히 벗겨낸 쿠로오가 역시 나는 사랑을 모르는 것 같아, 씩 웃어보였다. 아, 보쿠토는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니까 가르쳐줄래?”
울음이 쏟아져 견딜 수가 없었다. 엉엉 결국 울음 터뜨려버린 보쿠토를 끌어안은 목소리는 나직하다. 그제 생겼어. 그래서 보쿠토 너한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따스한 손이 등을 쓸어내린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까. 그 등을 마주 끌어안아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쿠로오, 쿠로오. 하염없이 이름만 부르던 보쿠토가 그럼, 입을 열었다. 쿠로오가 웃었다.
“나는 네 거야.”
나는 네 거야, 보쿠토. 네 거야, 약속한 대로. 벚꽃이 흐드러진다, 마침내 보쿠토가 활짝 웃었다.